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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사람에게라도…" 8년째 소액기부·나눔 시각장애인 부부

[쿨머니, 이웃집산타]사회연대은행에 기부하는 광혜안마원 문광석 신혜경 씨

이경숙 기자| | 01/03 05:53 | 조회 5902

일흔 살 동갑내기인 김병화 씨(가명, 광명시 하안동) 부부는 둘 다 장애인이다. 남편은 다리를 못 쓰고 아내는 앞을 못 본다. 중풍으로 쓰러진 남편은 팔이 성치 않아 수동휠체어를 타야 한다.

시각장애 2급인 아내는 그런 남편을 무거운 수동휠체어에 싣고 내리며 18년 동안 돌봤다. 노인의 몸으로는 쉽지 않은 일이었다. 아내의 몸에 무리가 왔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받는 생활비는 있었지만 부부는 장 보러 나가기가 힘들었다.

거동이 불편한 김 씨 부부한테 손을 내민 건 이웃에 사는 다른 장애인 부부였다. 시각장애안마사인 문광석(52)·신혜경(54) 부부는 김 씨 부부한테 매주 두 번 대용량 두유를 배달시켜줬다. 안마도 해줬다. 매달 4번, 1회 3000원에 안마 시술을 받을 수 있는 ‘복지바우처’ 제도를 연결해준 것이다.

이 부부는 혼자 손자를 키우는 이웃의 한 조손가정에도 두유를 배달시켜주고 안마를 해준다. 또, 다른 저소득층의 창업을 지원하겠다면서 2007년부터 사회연대은행에 매달 기부한다. 2009년 사업에 실패하면서 이들 부부도 기초생활수급자가 되었지만 정기 기부는 끊지 않았다. 눈은 보이지 않지만 이웃의 어려움을 보는 ‘약손’ 산타를 만나러 광명시로 찾아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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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광혜안마원 문광석 대표, 신혜경 부부, 조행숙 총무.


◇동네 저소득 노인들 안마하며 시작한 ‘두유 나눔’

12월 31일, 연말인데다 평일 오전이라설까. 문광석·신혜경 부부가 광명시 하안동에서 운영하는 광혜안마원은 한산했다. 문광석 광혜안마원장은 “복지바우처가 끝나는 시기라 고객이 줄었다”며 “1월에 복지바우처가 시작되면 다시 고객이 늘 것”이라고 말했다.

광혜안마원 고객 중 많은 수가 취약계층이다. 광혜안마원은 정부와 광명시, 경기도가 비용 일부를 ‘시각장애인 안마서비스’ 바우처를 받는다. 월 소득이 전국가구 평균 120%에 미치지 못하는 차상위계층이나 기초생활수급자 중 장애인이나 질환이 있는 60세 이상 노인이 대상자다. 1월5일부터 16일까지 광명시 주민센터로 신청하면 일반인은 1회 5만원에 받는 안마 시술을 3000원에 월 4회씩 1년간 받을 수 있다.

문 원장은 “정부와 지자체 지원이 큰데도 바우처를 쓰지 않는 어르신들이 많다”고 전했다. 가난한 어르신들은 몸이 아프더라도 “지금도 국가 돈으로 사는데 내가 살면 더 얼마나 더 살겠다고 국가에 부담을 더 주느냐”고 하거나 “살림이 어려워 3000원도 부담스럽다”고 했다.

그런 사연들을 듣다 시작한 게 두유 나눔이었다. 문 원장의 고객 중 69세 할머니는 허리가 심하게 굽어 빈 유모차를 잡고 체중을 분산해야 걸을 수 있었다. 그런데도 할머니는 늘 아침을 굶고 나가는 손자를 걱정했다.

혼자 몸으로 손자를 돌보는 할머니가 안쓰러워 문 원장은 “우리 집에서 배달시켜 먹는 김에 보내드리는 것”이라며 두유를 할머니 댁에 배달시켜드리기 시작했다. 바우처 고객이자 이웃인 다른 장애인 노인 댁에도 두유를 배달시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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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3년 재창업한 광혜안마원 내부.
◇창업 실패로 수급자 돼..그래도 사회연대은행 기부 끊지 않은 이유

어려운 이웃과 나누고 살지만 문 원장 부부의 살림은 넉넉지 않다. ‘4대 보험되는 장애인 일자리를 만들겠다’며 2008년 의욕적으로 확장했던 안마원은 8개월만에 문을 닫아야 했다. 세계금융위기로 지역 경기가 죽으면서 고객이 절반으로 줄어든 탓이었다. 부부는 인테리어비 등 5000만 원의 투자금을 잃고 일터도 잃었다.

사업에 실패하고 갚을 빚도 남아 있었지만 문 원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안마사 스승인 ‘의정부 양민식 선생’을 찾아가 사업 조언을 받았다. 광명시청을 찾아가 안마 서비스 바우처를 도입해 시각장애인 일자리를 만들자고 거듭 제안했다. 그렇게 4년 동안 준비해 2013년 다시 광혜안마원을 열었다. 재창업자금은 2005년 첫 창업 때 지원받았던 사회연대은행을 다시 찾아가 구했다.

사회연대은행의 창업지원을 받고 있지만, 그는 사회연대은행에 8년째 기부하고 있는 장기 후원자이기도 하다. 사업 실패로 살림살이가 어려웠던 시절에도 기부를 끊지 않았던 이유를 묻자 그는 “1만 원이라 크게 부담 되지 않았다”며 사회연대은행 창업지원자 모임에서 나왔던 이야기를 들려줬다.

“2005년에 처음으로 안마원을 창업하고 사회연대은행의 창업 지원을 받았어요. 1년 후 지원 받은 창업자들이 모여 밥을 먹는 자리가 있었는데, 어떤 분이 우리가 조금씩 모으면 한 집이라도 창업 도울 수 있을 거라고 했어요. 그래서 한 3만~5만 원 내려고 했더니 사회연대은행에 계신 분이 말렸어요. 1만 원씩 해야 오래 할 수 있다고요.”

그는 “우리 같은 사회적 약자가 좀 많으냐”며 “사업하고 싶어도 못하는 사람이 한 사람이라도 빨리 어려움 벗어나게 조금이라도 돕고 싶다”고 말했다. 그가 보기에, 수급자나 차상위계층으로 정부 지원을 받는 사람들이 창업을 한다는 건 큰일이다. 그는 수급자 생활에 적응해 안주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봤다. 그 역시도 창업 실패를 겪은 후 포기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었다. 그런데도 다시 도전한 건 “이건 내 삶이기 때문”이었다.

“기초생활수급자로 정부에서 돈 받는 사람 열 명 중 6~7명은 창업을 권하면 왜 쓸데없이 고생하냐고 합니다. 하지만 환갑, 진갑 다 지나면 체력이 떨어져 못합니다. 아직 젊다면 새로운 기술을 습득하거나 새 일에 도전해야 합니다. 자기 삶이니까요. 뭘 하는 게 좋을지 모른다면 평생교육원부터 찾아가 인간관계론, 사회심리학 같은 인문교양 프로그램부터 들어보세요. 자신이 모르던 자신에 눈이 뜨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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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광석 광혜안마원 대표.

◇26세부터 시력 상실...수차례 자살시도 실패 후 "실패 속에 길 있다" 깨달아

“자신에 눈을 뜨면 자기가 도전하고 싶은 일이 보인다”고 말하는 그는 시력을 잃고 나서야 자신에 눈을 떴다. 부친의 사업실패로 중학교를 중퇴한 후 중장비기사가 됐던 그는 26세에 큰 돈 벌어보겠다고 괌에 갔다가 말라리아에 걸렸다. 귀국한 그에게 망막 황반변성이란 병이 찾아왔다. 31세에 완전히 시력을 잃은 그는 수차례 자살을 시도했다. 육교에서 뛰어내리고 목을 매고 수면제 수십 알을 삼켰지만 번번이 살아남았다.

자살시도에 수없이 실패하자 그는 “신경질이 나서 살기로 결심”하고 1998년 시각장애인으로 등록했다. 장애인교구에 다니면서 자신보다 더 심한 장애를 가진 사람들을 알게 됐다. 서울맹학교에서 의료전문학사를 딴 후 안마사로 새 삶을 시작한 그는 이제 '광명 약손'으로 불린다. 안마원 문을 닫았을 땐 집으로 단골고객이 찾아왔다. 수년 전 골반교정을 받았던 한 고객은 이사한 사업장 주소를 알아내 다시 그를 찾아오기도 했다.

그는 “정말 피눈물 나는 경험을 하게 되면 오히려 살아봐야겠다는 오기가 생긴다”며 “사회적 약자라 해도 자기 삶을 찾아 무슨 일이든 조금이라도 시작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약자에게는 손 내미는 사람이 더 많다"고 덧붙였다. 그 손을 잡아 본 경험이 있어설까. 이들 부부는 나눌 것이 많지 않아도 나누며 산다.


[팁]문 원장 부부가 기부하는 사회연대은행은?
가난한 창업가들을 위한 은행...2002년 설립 이래 1880건, 364억 원 창업 지원


문광석 광혜안마원장 부부가 2006년 이후 월 1만 원씩 정기 기부하고 있는 사회연대은행(www.bss.or.kr)은 가난한 창업가들을 위한 은행이다. 담보 없이 소액을 빌려준다고 해서 마이크로크레디트(Microcredit)이라 불린다.

사회연대은행은 문 원장처럼 담보나 신용이 없는 저소득층이나 사회적 가치 창출을 우선시하는 사회적기업, 고금리 이자로 고통 받는 대학생들한테 저금리 대출금을 지원한다. 창업 교육과 컨설팅도 제공한다. 2002년 창립 이래 누적 기준으로 364억 여원을 1880건 대출해 3875명의 고용 창출 효과를 냈다.

사회연대은행의 창업지원을 받은 창업자 중 174명은 문 원장처럼 현재 사회연대은행 후원자가 됐다. 수혜자에서 공여자가 된 것이다. 이들이 그간 기부한 금액을 합하면 1억1112만원에 이른다.

문 원장은 “창업은 자기만의 노하우, 비전을 확고히 만들기까지는 함부로 덤벼들지 말라”며 “뜻이 굳건하지 않으면, 있는 것도 잃을 수 있다”고 조언했다. 그는 “처음엔 크게 벌이지 말고 소규모로 하다가 요령이 생긴 후 확장해도 늦지 않다”며 “자기가 책임지고 할 수 있는 자신감이 생겼을 땐 늦추지 말고 부정적인 생각, 잡생각이 들기 전에 밀어붙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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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연대은행의 창업지원을 받은 후 다른 창업자를 위해 정기 기부하고 있는 희망나눔가게들. /사진제공=사회연대은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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