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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0만원으로 시작해 12만여명에 ‘밥퍼’…양평의 오병이어

[쿨머니, 이웃집 산타]정왕훈 포도나무동산교회 목사와 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

이경숙 기자 | 01/17 05:56 | 조회 12453

경기도 양평군의 버려진 돼지우리에 비닐로 지붕을 얹고 목회를 시작했던 한 목사는 양평 5일장에서 나물 따위 팔겠다고 땡볕에 나와 앉은 노인들한테 얼음물을 나눠주다 이들이 밥도 굶는다는 걸 알게 됐다. 그의 수중에 있는 돈은 80만 원.

2006년 4월, 그는 방산시장에 가 밥솥, 국그릇, 식판을 사왔다. 집에선 쌀 한 가마를 지고 나와 양평역 앞에서 밥을 지어 나눠줬다. 그 다음 주엔 식재료 살 돈이 없었다. 그는 12살 딸아이의 돼지저금통을 깼다. 8만7000원 남짓 나왔다. “나중에 좋은 거 사줄게”하고 그 돈으로 쌀을 샀다. 지역주민들이 일손과 남는 것을 조금씩 보탰다.

이렇게 양평역과 용문역에서 출발한 ‘사랑의 밥퍼’ 사업은 9년 동안 12만 명에게 밥을 먹였다. 설거지하다 만난 인연들이 계기가 되어 2007년 지역아동센터 2개가 만들어졌다. 여기로 300여 명의 자원봉사자가 모여 78명의 동네아이들을 돌본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나눔을 이어가는 사람들이 있다는 제보를 받고 13일, 정왕훈 포도나무동산교회 담임목사(53)를 찾아갔다. 도로까지 마중 나와 있는 정 목사의 모습은 먼 발치에서 보기엔 목회자라기보다는 무예인 같았다. 부족한 것은 무엇이든 자원봉사자들과 함께 몸으로 만들고 해결했던 세월이 몸에서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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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 '사랑의 밥퍼'와 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설립자인 정왕훈 포도나무동산교회 담임목사가 자신이 직접 만든 지역아동센터 내부공간을 설명하고 있다.

◇농사일부터 목수일까지 몸으로 채운 밥그릇

양평 새마을회 건물 3층 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에 들어서자 아이들 목소리가 왁자지껄 들려왔다. 손때가 묻어 반들반들한 앉은뱅이 원목책상마다 아이들의 낙서가 가득 보였다. 아무개와 아무개 이름 사이에 하트 표시, ‘기생충’이나 ‘랄랄라’ 따위 의미 없는 단어, 어설프게 그려진 누군가의 모습.

정 목사는 책상을 손바닥으로 쓸며 “이 곳을 열 때 인테리어에 들일 품삯이 없어 두 달 동안 새벽 6시부터 밤 10시까지 문 한 짝, 책상 하나, 마루까지 다 손으로 만들었다”고 말했다. 원목 등 재료비는 인근 체육공원에서 문화공연을 열어 벌었다. 주민들 요청으로 용문역 근처에 공부방을 열었을 땐 실무자 3명이 가서 그 일을 했다.

‘사랑의 밥퍼’ 초창기에도 없는 건 다 정 목사와 자원봉사자들이 몸으로 만들었다. 눈이 오던 어느 겨울, 반찬 살 돈이 없었는데 강원도 홍천에 얼어서 버리게 된 채소가 밭에 있다는 소식이 들렸다. 정 목사는 교회 신도 2명과 함께 달려가 밤새 채소를 거둬다 다음날 나물을 무치고 국을 끓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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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06년부터 매주 토요일 양평역과 용문역에서 열리고 있는 사랑의 밥퍼 행사. 지난해 12월 무료급식 수혜자가 연 인원 12만명을 넘어섰다.

1999년 10명으로 시작한 교회 신도들이 300여명까지 늘었으니 지금쯤 굵직한 후원자 한둘 나올 법도 하건 만, 이 교회엔 없다. 한 주에 들어오는 헌금은 적을 땐 50만 원, 많아야 100만 원이다. 이 돈으로는 300여 명의 점심 차리기에도 모자라 보였다.

그는 “교회 재정이 어렵다”면서도 “나는 제일 행복한 목사”라고 말했다. 평택 출신의 그가 ‘임기’ 따라 양평에 들어와 처음 본 건 겨울한파에도 문 없이 살던 가난한 노인들이었다. 그들의 집에 나무문 달아주고 벽지 발라주면서 그는 “어려운 사람과 함께 하자”는 사명을 다졌다.

그는 뭐든 얻어다 나눠줬다. 김치, 쌀, 무, 운동화 등등. 그러다보니 의정부, 인천 등 서너 시간 거리에서도 모여들었다. 다들 형편이 어려운 사람들이었다. 그는 “그 많은 걸 얻어올 수 있는 능력이 있으니 감사할 뿐”이라고 말했다.

“그 분들이 뭘 받아서 오시는 게 아니에요. 자기 마음 만져주니 행복해 하시는 것이에요. 우리 교회 같은 곳, 대한민국에 하나밖에 없을 거예요. 교회에서 일어나는 일들, 사람들 모두 정말 재밌어요.”

교회가 신도들한테 얻은 건 헌금보다는 헌신이었다. 가장 헌신적인 일꾼 중 한 명인 김용필 포도밭에아이들센터장(38) 역시 교회 신도를 통해 이어진 인연이었다. 충남 대천에 살던 김 센터장은 청혼했을 때 부인이 “아버지는 안 계시지만 아버지 같은 분이 계시니 결혼 허락을 받아야 한다”고 해서 정 목사를 처음 만난 후 지금껏 함께 일을 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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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평읍 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 멤버들. 왼쪽부터 김용필 센터장, 손호분 안정숙 생활복지사, 설립자인 정왕훈 포도나무동산교회 담임목사.

◇ 출생신고조차 없던 쌍둥이, '전따'...공부방 다니며 달라진 아이들

‘밥퍼’ 사업은 교회 신도들과 함께 DNI컨설팅, 양평소방서 여성의용소방대원, 일진레미콘, 사랑의약국, 양평대명리조트, 한광디자인건설 등 지역 주민과 업체 직원들이 꾸준히 봉사하고 기부하면서 지금은 운영이 안정됐다. 서울 등 인근 지역에서 ‘밥퍼’ 사업을 하는 단체가 늘어 양평역, 용문역까지 찾아오던 결식자들 숫자도 줄었다. 그래선지 정 목사는 밥 굶는 어르신보다는 정에 굶주린 아이들 이야기를 더 많이 들려줬다.

2006년 무렵 일이었다. 무료 급식을 마치고 밤늦도록 설거지를 하고 있는데 8~9살쯤 되어 보이는 아이 두 명이 양평역 여기저기를 뛰어다녔다. 아이들은 그 다음주, 또 다음주에도 보였다. 아이들은 밥퍼 행사장 근처를 맴돌기만 할 뿐 와서 먹지는 않았다. 어느 밤, 정 목사는 아이들한테 다가가 장난을 걸다가 “밥은 먹었니?”하고 물었다.

“애들이 밥을 안 먹었대서 순대를 사줬더니 못 먹어요. 부자라서 안 먹는 게 아니라 먹어본 적이 없어서 못 먹는대. 집에 가보자 하고 같이 갔더니 싱크대에 라면봉지만 가득해. 아버지는 술 취해 쓰러져서 애들이 학교에 갔는지, 저녁을 먹었는지 알지를 못해요. 그 집 나와 교회에 와서 혼자 울었어요. 그리고 신도들한테 말했죠. 저 아이들이 천사다, 우리가 키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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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 자원봉사자가 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 멤버들에서 중학생들에게 영어를 가르치고 있다.
그래서 2007년 문을 연 곳이 양평의 ‘포도밭에아이들’ 지역아동센터였다. 비록 그 아이들은 센터 설립 전에 이사를 갔지만, 다른 가난한 집 아이들이 센터를 이용하게 된다. 돌보는 사람들이 생기니 아이들 삶이 달라졌다.

센터에 오기 전, 원경이(가명)는 ‘전따’ 즉 전교생 왕따로 불렸다. 종교적 이유로 결혼한 일본인 엄마와 한국인 아빠 사이에서 자란 원경이는 말이 어눌했고 머리카락이 지저분했다. 센터를 통해 미술교육을 받고 모기업 주최 대회에서 수상하며 TV에까지 출연하자, 아이가 달라졌다. 에너지가 넘치는 아이가 됐다. 외모를 가꾸면서 주변에서 이쁘다는 얘기도 듣고 인기도 높아졌다.

초등학교 6학년생 쌍둥이 형제는 김 센터장이 “뽀뽀~” 하면 입술을 내밀고 달려온다. 김 센터장이 쌍둥이를 처음 만난 건 아이들 9살 때였다. 남자아이 두 명이 한 겨울에 반팔 옷을 입고 교회 앞을 뛰어다니는 걸 보고 센터로 데려와 물어보니 학교에 다니지 않고 있었다. 출생신고를 안 해 주민등록번호도 없었다. 결혼신고 없이 살던 엄마가 집을 나간 후 아빠는 아이들을 방치하고 있었다.

센터 교사들이 서둘러 아이들 출생신고를 하고 교육청에 문의해 초등학교에 입학시켰다. 아침, 저녁으로 통학도 도왔다. 교사들이 옷을 만들어 입혔다. 그러자 아이들 아빠가 달라졌다. 다시 일을 다니기 시작했다. 아이들 삶의 변화는 어른들 삶도 바꾼다.

◇ 아이들 ‘환상의 공간’ 마련이 목표...“2억 원 보증금 못 구해도 할 것”

정 목사와 센터 사람들은 요즘 2억 원을 구하러 사방으로 뛰고 있다. 지역아동센터를 확장하고 청소년 쉼터를 새로 열기 위해선 지금보다 넓은 공간이 필요하기 때문이다. 두 센터의 대기자만도 28명인데, 인근 학교에선 방과 후 돌봄교실 확대가 어렵다며 센터 정원을 늘려주길 원하고 있다.

김 센터장은 “최근 양평에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조성되면서 이주민과 원주민의 빈부 격차가 더 벌어지고 있다”며 “이것이 학습능력과 사교육 혜택 차이로 이어지면서 교육현장에서 빈익빈부익부가 커지고 있다”고 말했다.

정 목사는 “우리 이름으로 보증금을 내지 않아도 좋다”며 “누군가 자기 이름으로 건물을 임대해주더라도 월세 부담만 없애주면 좋겠다”고 말했다. 아직도 건물 지하에 머물고 있는 교회도 비좁으니 이사해야 하지 않냐고 묻자, 그럴 돈 있으면 당장 공부방에 지붕을 얹겠단다.

“예수는 말구유에서 태어났습니다. 교회가 지하라 안 오시면 예수가 아니죠. 센터 보증금 구해서 이사 가면 아이들한테 환상의 공간을 만들어주고 싶어요. 2층엔 아이들 방 만들고 구름다리로 건너가게 할 거에요. 옥상엔 체육시설과 하늘정원, 카페도 만들고요. 돈 못 구하면요? 언젠 돈 있어서 했나요. 돈 없어도 만들 겁니다.”

그와 센터 사람들은 예수가 한 어린아이가 내놓은 보리떡 5개와 생선 두 마리로 5000명이 넘는 사람들을 먹였다는 오병이어 기적의 현대판을 만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80만 원'으로 처음 시작했을 때처럼 이번에도 나눔이 나눔을 부를 것이다. '사랑의밥퍼', 지역아동센터 후원은 포도나무동산교회(031-771-2509)에서 안내 받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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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역아동센터 포도밭에아이들 소속 중고등부 학생들이 2014년 11월 제주도에서 경기사회복지공동모금회 지원으로 열린 진로캠프 참가 중 해변에서 뛰놀고 있다./사진제공=포도밭에아이들



"양평 '사랑의밥퍼'와 아이들 도와주세요" 제보한 DNI컨설팅 임직원들

“서울엔 자원이 많이 모이지만, 양평은 안 그렇더라구요. 그래서 못 끊고 있어요.”

서울 낙성대 근처에 사는 박재범 DNI컨설팅 차장은 2시간 걸리는데도 양평까지 무료급식 봉사를 하러 간다. 2007년 시작했으니 8년째다. 그는 “한 대기업 홍보직원들이 와서 현수막 걸고 후다닥 기념사진만 찍고 가버리는 모습을 보고 나는 저러지 말아야하면서 계속 봉사를 지속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사 직원들이 봉사하는 양평의 ‘사랑의밥퍼'와 지역아동센터들에 좀 더 도움이 필요해 보인다며 제보한 DNI컨설팅은 고객관계관리(CRM) 전문업체다. 전 직원이 15명, 박태원 대표까지 16명 규모의 작은 기업이지만 전 직원이 매달 3~4주차 토요일에 2~3명씩 짝을 지어 자원봉사를 나간다.

봉사처는 양평의 '사랑의밥퍼'와 영등포의 사회복지법인 살레시오수도회의 ‘마자렐로센터’ 중 선택한다. ‘사랑의밥퍼’는 양평에 사는 박 대표의 추천으로, ‘마자렐로센터’는 한 직원의 추천으로 인연을 맺었다.

CRM컨설턴트는 업무량이 많은 전문업종 중 하나다. 그러나 이들은 주말까지 일이 몰릴 땐 다른 직원과 순번을 바꿔서라도 거르지 않고 간다. 지난해부터 직원 대표로 주말봉사 일정과 기부 통장 관리를 맡은 이정인 연구원은 “직원들이 내가 안 가면 다른 직원이 혼자 가게 된다는 생각에 봉사를 거르지 않는다”며 "우리가 가는 봉사처들은 평일보다 주말에 일손이 부족하다"고 전했다.

이 연구원은 “컨설턴트들이 외부의 각자 사이트(고객사)에서 업무를 보다 보니 교류가 부족한데 봉사활동을 통해 함께 가는 동료를 좀 더 알게 된다”며 “연중 봉사 계획을 짤 때 일부러 서로 교류가 없던 직원끼리 짝을 지어준다”고 말했다.

이 활동엔 유래가 있다. 2004년 주5일제가 1000명 이상 사업장에 도입됐을 때, 이 회사는 소사업장인데도 격주 주5일제를 도입했다. 출근하는 토요일엔 영화나 공연 관람, 체육대회, 세미나, 봉사활동 등 직원 교류 프로그램을 열었다. 이 연구원은 “이 중 토요봉사, 세미나가 남아 이어지고 있다”고 말했다.

박 대표는 “직원들이 봉사를 하면 자연스럽게 기부하게 된다”며 “회사 차원 기부보다 직원들 자발적 기부가 더 큰 것 같다”고 말했다. 그는 “잘 되는 사람, 못 되는 사람 다 모여 일가친척 이루듯 지역사회, 공동체도 그렇게 이뤄지는 것”이라며 “나눠쓸 수 있으면 나누는 게 여유”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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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5일제 시행 때 토요일 봉사를 시작한 이래 10년째 봉사와 기부를 이어오고 있는 DNI컨설팅 직원들과 박태원 대표(앞 줄 가운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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