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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마윈과 마이코스키

이경숙 기자 | 06/01 05:59 | 조회 45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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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숙 쿨머니팀장
이로운넷 공동대표
1995년 항저우 거리에서 벌어진 일이다. 한 방송사가 몰래카메라를 찍고 있었다. 우락부락하게 생긴 사내 서넛이 거리의 맨홀 뚜껑을 훔치는 상황. 당시 항저우에선 이런 도둑들 때문에 아이들이 맨홀에 빠져 죽거나 다치는 사고가 자주 일어나고 있었다. 거리를 지나는 사람들 누구도 감히 말리려들지 않았다.

그때 비쩍 마른 남자 한 명이 자전거를 타고 사내들 주변을 멀찌감치에서 빙글빙글 돌며 살피다가 외쳤다. “뭣들 하는 짓이에요! 당장 멈춰요.” 그러고는 사람들을 불러 모으기 시작했다. “여러분, 이 사람들이 맨홀 뚜껑을 훔치고 있습니다. 같이 말립시다.”

세계 증시 역사상 최대 규모 기업공개(IPO)로 중국 1위 자산가가 된 알리바바 창업자, 마윈 이야기다. 이 사건을 계기로 항저우 공무원들의 통역관으로 미국의 인터넷 문화를 보고 온 그는 중국 중소제조기업들이 대기업에 의존하지 않고도 판로를 개척할 수 있도록 해외 바이어를 연결해주는 인터넷 생태계를 만들겠다며 B2B 전자상거래 서비스를 고안했다.

이번엔 2006년의 일이다. 29세의 한 청년이 아르헨티나로 놀러갔다. 탱고를 배우고 폴로를 치고 전통신발 알파르가타를 신고 전통주 말벡을 마시며 아르헨티나 사람들과 뒤섞여 신나게 놀다 그는 맨발로 다니는 애들을 봤다. 맨발에 난 상처 때문에 애들은 여러 질병에 감염됐다.

그는 “아이들에게 신발을 신겨주자”고 결심했다. 그것도 꾸준히 신겨주고 싶었다. 그래서 그는 기부 대신 기부를 목적으로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알파르가타’를 미국인 취향에 맞춰 개조해 팔되 한 켤레가 팔릴 때마다 신발이 없는 아이들한테 한 켤레씩 줬다. 그로부터 9년이 지난 올해, 그와 회사가 기부한 신발 수는 3500만 켤레에 이르렀다. 탐스슈즈 창립자, 블레이크 마이코스키 이야기다.

선한 목적으로 출발해 크게 성공한 이 두 창업가들이 한국에 왔다 간 지난 달 말. 사회적기업가 사이에선 한 공정여행사업가의 페이스북 글이 널리 공유됐다. 요지는 이랬다.

‘해외의 취약계층을 대상으로 한 기업은 사회적기업으로 인증 받을 수 없다. 인증 사회적기업을 지원하는 예산은 한국 내 취약계층을 위한 것이라는 논리다. 탐스슈즈도 한국에선 사회적기업이 아니다. 해외 취약계층에게 신발을 나눠주므로.’

사회적경제기본법 처리가 4월 국회에서 무산된 후, 공정무역기업·소셜벤처 등 선한 목적으로 창업했지만 사회적기업이라 불릴 수 없는 업체들의 실망은 컸다. 이 법이 통과되면 '사회적 경제 조직'으로 인정받을 길이 열릴 것이라는 기대가 있던 터였다. 업체들은 온, 오프라인에서 웅성거리며 어려움을 토로하고 대책을 토론했다.

대개의 소셜벤처, 공정무역업체들은 정부 지원금보다는 사회적기업 생태계로의 편입이 더 절실하다. 이를 위해선 국내에선 '사회적 가치를 추구하는 기업'이라는 정체성을 공공기관으로부터 인정 받아야 한다. 아니면 관련 사업의 확장성에 제한이 생긴다.

예를 들어 사회적기업 인증이 없으면 저개발지역을 지원하는 소셜벤처라 해도 한국국제협력단(KOICA)의 기업 협력 사업에 참여할 수 없다. 예비 사회적기업들은 나라장터를 통한 입찰에서 인증 사회적기업이 얻는 가산점을 받지 못한다.

정부의 인증이나 지원 없이도 사업에 성공한 마윈이나 마이코스키 이야기를 들려주면 이들이 위로를 얻을까? 아차, 마윈에겐 무수익 경영을 3년 넘게 기다려준 투자자 손정의가, 마이코스키에겐 그의 무모한 시도를 응원해 매출을 끌어올려준 패셔니스타들과 미디어들이 있었다. 우리 안에 있을지도 모를 제2의 마윈과 마이코스키들한테는 누가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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