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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지 마세요. 고통이 삶을 풍요롭고 성숙하게 만듭니다”

[쿨머니, 토닥토닥편지]<2>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의 메시지

백선기 머니투데이 쿨머니에디터| | 06/20 15:06 | 조회 11858

“죽고 싶어요.” 지난 4년 동안 한강다리 위에서 무려 2650여 건의 전화가 걸려왔다. 자살을 결심하고 다리 위로 올라왔던 이들의 마음을 돌려놓은 건 'SOS생명의전화'다.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지원으로 운영되는 이 전화는 2011년 마포대교를 시작으로 지금까지 15개 한강 및 지방 자살 다발지(교량)에 53대가 설치됐다. 전화기를 들면 한국생명의전화 전담상담원이 연결된다. 상담원들의 어떤 말이 자살 결심자들의 마음을 되돌렸을까. 한국생명의전화를 26년 동안 지켜온 하상훈 원장(56)을 만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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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상훈 한국생명의전화 원장. /사진=백선기


- SOS생명의전화 상담 43.2%가 청소년...진로, 진학 고민
- 미국 자살실패자 중 80%가 자연사...위기 넘기면 잘 살아
- 지인 자살 후 최소6명이 외상후장애 “내 목숨 내 것 아니야”
- 공감은 마음의 영양소...경청과 수용으로 신뢰 쌓은 후 조언해야


거의 모두가 잠든 시각, 어둠을 가르는 전화벨 소리는 가슴을 철렁 내려앉게 합니다. 수화기 너머로 때론 당신의 목소리가 전혀 들리지 않고 한참을 있다가 끊어지면 애간장이 녹습니다. 차라리 ‘꺼억꺼억’ 울먹임으로 제대로 말을 잇지 못하는 편이 훨씬 낫더군요. 한결같이 ‘사는 게 힘들어 죽고 싶다’고 하지만 난 알아요. 그 흐느낌이란 ‘날 좀 살려 달라, 날 좀 도와달라’는 울부짖음이란 걸 말입니다.

전화해줘서 고맙습니다. 수화기를 집어 드는 순간 당신은 이미 혼자가 아니니까요. 지난 2011년 마포대교에 처음으로 SOS생명의전화가 생겨난 이후 참 많은 일들이 벌어졌습니다. 4년 동안 2650건이 넘는 자살위기 상담 전화가 걸려왔고 그 중 421건은 119대원과 경찰이 출동하는 급박한 상황으로 치달았지요.

짧은 시간이었지만 당신이 무사히 가족의 품에 안겼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그 기쁨과 안도감이란 말로 형언키 어렵습니다. 사실 처음 이 일을 시작했을 때 이렇게 많은 전화가 걸려올 줄은 상상을 못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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SOS생명의전화기는 버튼이 두개다. 빨간 색 '119'를 누르면 소방재난본부 상황실로 연결돼 구조신고를 할 수 있다. 초록색 '생명의전화'를 누르면 상담실로 연결된다. 상담을 위해 생애위기상담사 자격증을 취득한 전문 상담요원이 365일 24시간 대기하고 있다. /사진제공=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걸려온 전화 사연들은 모두 눈물겹습니다. 가족과의 불화, 이성문제, 취업, 진학, 입시, 경제적 곤란 등 참 끄집어내기 힘든 고민들을 털어놓았지요. 정말로 힘들겠다 생각했어요. 힘든 상황일수록 시차를 두고 오는 것이 아니라 왜 파도처럼 정신없이 밀려드는지 세상이 참 야속하기만 하더군요.

여러 사연이 있지만 고작 50만 원의 빚 때문에 극단적인 생각을 가졌던 30대 가장의 이야기는 제 기억에 또렷이 남습니다. 그는 사고로 허리를 다쳐 오래 서서 일할 수 없게 되자 다니던 정육점에서 해고됐습니다. 딸아이 등록금 때문에 사채 50만원을 썼는데 매주 10만원의 이자가 붙었다는군요. 세상에 그런 사기꾼들이 어디 있습니까?

빚 독촉에 차라리 죽고 싶다는 그에게 대안이 있다고 하니 ‘정말이에요? 진짜 해결방법이 있어요?’ 되물었습니다. 그 들뜬 목소리가 잊히질 않습니다.

우리는 그분이 경기도 무한돌봄프로그램을 통해 빚을 갚도록 도와드렸고 지역사회와 연계해 살아갈 방도를 함께 모색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전화 한 통화가 얼마나 큰 변화를 가져올까 의아해하기도 하지만 우리나라보다 훨씬 전부터 미국, 호주, 일본 등 해외 선진국에 설치되어 있는 자살예방상담전화의 사례를 보면 그렇지 않다는 걸 깨닫게 됩니다.

한 연구보고서에 따르면, 미국 샌프란시스코의 금문교처럼 투신자살장소로 유명한 다리에서 자살을 시도했다가 실패했던 즉 살아난 사람들의 삶을 추적해봤더니 그중 80%가 자연사했다는 결론입니다. 그만큼 자살은 충동적으로 일어나고 그 위기를 넘기면 잘 살아나갈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해주는 것이지요.

현재 우리나라에 설치되어 있는 SOS생명의전화에는 다양한 연령대의 사람들이 전화를 겁니다. 상담자 입장에서 가장 가슴 아픈 건 한창 발랄해야 할 10대 청소년들의 상담전화가 지난 4년간 1146건(43.2%)으로 제일 많았다는 겁니다. 그중에서도 고등학생이 998건으로 가장 많았고 이들의 고민 중 1위는 진로와 학업문제였습니다.

한 10대 여학생은 6개 대학에 지원했는데 다 떨어져 죽고 싶다더군요. 성적도 상위권이고 학생회장도 해서 선생님, 친구, 부모님 모두 자기한테 기대가 컸다는 거예요. “3년 동안 정말 최선을 다했는데도 이런 결과가 나오니 미래가 보이지 않아 불안하고 집에도 학교에도 가기가 두렵다”면서 아이는 “살고 싶지 않다, 차라리 죽는 게 낫다”고 했어요.

우리 상담원은 이 학생이 용기를 갖고 부모님께 솔직한 마음을 털어놓도록 도와주었어요. 부모님도 이 학생의 힘든 마음을 알고는 함께 공감해주셨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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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변을 둘러보면 위기청소년을 위한 ‘위(WEE, We&Education&Emotion Center)’센터나 복지관 상담센터 등 다양한 기관들이 여러분의 손을 잡아줄 준비가 돼 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제게 묻습니다. 왜 자살을 사회가 나서서 예방해야 하느냐구요. 저는 자살하신 분들의 유가족이 너무 힘들어하기 때문이라고 말하고 싶어요.

한 사람이 자살하면 평균 6명이 외상후스트레스장애를 겪는다고 합니다. 그분들은 평생 고인을 자아로부터 분리시켜 하늘나라로 보내지 못하고 그 시간에 멈춰서 살아갑니다. 외국에서는 그래서 유가족이란 말 대신 ‘피해자(victim)’라는 말을 씁니다. 주변에 자살하는 사람이 생기면 그 가족이나 친구들은 고통의 출발점입니다. 그 고통이 너무 크다보니 따라 죽고 싶은 마음이 들기도 하구요. 악순환의 연속입니다. 자살은 한 사람 개인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가 함께 풀어나가야 할 과제입니다.

힘든 상황은 누구에게나 있기 마련이고 이를 묵묵히 헤쳐 나가다보면 분명히 희망적인 내일이 올 수 있어요. 그리고 고통이란 삶을 풍성하게 하고 성장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강력한 무기입니다. 너무 교과서적인 이야기라구요? 하지만 그게 진실인걸요. 그것이 26년간 상담을 하면서 제가 몸소 체득한 결과이자 여러분께 꼭 해드리고 싶은 이야기입니다.



[팁]“공감은 심리적 영양소” 자살대처법 5가지

“진정한 공감은 괜찮아질 거라고 강요하지 않고 괜찮지 않다는 걸 인정하는 것.”

사고로 남편을 잃은 셰릴 샌드버그 페이스북 COO(최고운영책임자)가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글이 최근 페이스북에서 화제가 됐다. 이 글에서 “슬픔이라는 경험은 지극히 개인적이지만 자신의 경험을 공유하며 용기를 준 분들 덕분에 이겨내는 데 도움이 됐다”고 고마움을 표시했다.

힘들어 죽고 싶다고 할 때 어떻게 위로해주어야 상대방의 공감을 살 수 있을까? 상대방 목소리만을 듣고도 마음을 읽어내야 하는 SOS생명의전화 전문 상담사들의 노하우를 하 원장은 이렇게 전한다.

첫째, “수용하고 경청하라.” 수용이란 상대방의 말을 평가하거나 비판하지 않는 것이다. 있는 그대로 존중하고 경청하다보면 상대방의 마음 속에 들어갈 수 있다. 심정에 초점을 두고 대화를 하려고 할 때 비로소 신뢰가 형성된다. 신뢰가 쌓여야 충고도 귀에 들어오는 법, 공감은 심리적영양소다. 공감을 받지 못하면 사람은 말라죽는다. 사람은 공감을 주는 사람에게 마음을 열게 돼 있다.

둘째,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주자.” 가정에서 학교에서 대화가 안 된다고 포기하지 말라. 이를 보완해줄 장치는 많다. 종교기관. 복지관. 상담센터등 활용할 자원은 많다. 지역사회를 잘 활용해 사회적 가족을 만들어주자. 내가 힘들고 어려울 때 내 주변에 나를 도와줄 수 있는 사람이 많다는 것, 이것만으로도 큰 힘이 된다.

셋째, “고난을 이겨내는 훈련을 하자.” 자녀를 강하게 교육시켜라. 윽박지르라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선택해 결정하고 이에 대해 책임을 질 수 있는 힘을 길러주라. 실패했을 때 압박감을 주지 말고 원인을 분석해 보완점을 찾아 나가는 문제해결 역량을 키워줘라. 부모가 나서서 해결해주다보면 스스로 해결하려는 힘이 안 생긴다.

넷째, “병원이나 학교, 보건소 상담센터 찾기를 터부시하면 안 된다.” 누군가 이곳에 갔다 오면 낙인이 찍힌다는 느낌 때문에 문제를 크게 키운다. 몸이 아프면 병원에 가듯이 마음이 힘들 때 병원을 찾는 것은 매우 당연하고 바람직한 일이다. 인식을 바꿔야 한다.

다섯째, “슬픔과 고통을 표현할 기회와 시간을 충분히 주라.” 탤런트 최진실 씨 가족들의 잇단 자살은 유가족의 슬픔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를 여실히 보여준 사건이다. 기다려주라 충분히 슬픔을 표현할 수 있는 기회를 주라.

가령 자살한 유가족들에게 빨리 잊으라고 하면 절대적으로 상처가 된다. 고인을 하늘나라로 보내고 자기로 다시 돌아오는 것을 심리학적 용어로 부활(Resurrection)이라고 한다.

현실을 인정할 수 있도록 하려면 공동체 안에서 많이 도와주고 배려해주어야 한다. 스스로 살아갈 수 있을 때 까지 그분의 속도에 맞춰서 잘 기다려줘야 한다. 현재 생명의전화에는 유가족들의 자조모임을 통해 상처를 치유해가며 전화 상담봉사를 하고 있는 사람도 있다.

생명의전화 상담은 마포·한남·원효대교 등 15개 다리 위 SOS생명의전화 외에도 전화통화(1588-9191)을 통해 받을 수 있다. 자살예방 지원사업에 대한 소개는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 홈페이지(www.lif.or.kr)에서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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