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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어머님은 예쁜 치매예요. 포기하지 마세요"

[쿨머니, 토닥토닥편지]<5-1> 배승룡 신곡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이 치매환자와 가족들에게 띄우는 희망의 메세지

백선기 머니투데이 쿨머니에디터| | 10/24 08:57 | 조회 10024

국내 치매 환자 수는 61만 명(2013년말 기준, 국회 예산정책처)이다. 2050년에는 270만 명이 넘을 것으로 예측되고 있다. 의학계에서는 이미 치매가 특별한 병이 아니라 감기처럼 노년기에 찾아드는 흔한 질병으로 여긴다. 그러나 일반인한테 치매는 불치병으로 여겨진다. 어떻게 대응해야 할까? 배승룡 신곡노인종합복지관 관장은 예방이 최우선이지만 일찍 발견해 치료한다면 사회로부터 격리되지 않고 일상 속에서 충분히 가족, 이웃과 더불어 지낼 수 있다고 말한다. 치매에 걸려도 아름다운 삶을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다. 예쁘게 치매 걸린 어르신들 이야기를 배 관장이 전한다.

- 예쁜 치매의 첫걸음은 조기발견과 치료
- ‘격리’ 대신 ‘사람 속’으로...치료효과 높아
- 치매 등급 확대로 경증치매환자 6000여 명 국가 지원 받을 듯
- 전국 12곳 주간보호프로그램 환자 70.1% 이상증세 감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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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승룡 신곡노인종합복지관 관장./사진=강승원 작가
"관장님! 오랜만이네요. 요즘 통 얼굴 뵙기가 어려웠는데 바쁘신가보네요."

박영희 어르신이 저를 보시더니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습니다. 이 분은 경증치매환자입니다. 올해 90살이 되셨죠. 처음 뵌 게 4년 전인데, 인지능력은 그때나 지금이나 그대로입니다. 체력은 그때에 비하면 조금 쇠약해지셨지만요.

치매에 걸리면 곧 인생이 끝나고 가족이 해체되는 줄 알지만 이건 오해입니다. 박 할머니처럼 초기에 잘 관리하면 예쁜 치매로 오랫동안 지낼 수 있습니다.

할머니는 혼자서 옷을 갈아 입고 밥도 드시고요, 전화를 받거나 화장실 가는 일도 혼자서 하실 수 있어요. 사람을 못 알아보는 일도 없으시죠. 다만, 기억력과 주의 집중력이 많이 떨어지셨어요. 오늘이 몇일인지, 무슨 요일인지 잘 기억하지 못하고 같은 질문을 반복하셔서 일상생활을 혼자서만 영위하시기엔 좀 불편하세요.

이런 할머니의 기억을 붙들어매어주는 곳이 있습니다. 경증치매어르신들을 위한 주간보호프로그램인 '쑥부쟁이교실'입니다. 쑥부쟁이교실은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생명보험재단)이 증세가 가볍다는 이유로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지 못해 복지사각지대에 놓인 경증치매어르신들을 지원해주는 전국 12곳의 주간보호프로그램 중 하나에요.

할머니의 평일 하루는 오전 9시가 좀 지나 복지관에서 보낸 버스에 올라타면서 시작됩니다. 10시부터 오후 4시까지 시간표에 따라 음악, 미술, 원예치료로 오감을 자극합니다. 실버가베활동을 통해 소근육을 발달시키고 공간지각력과 문제해결능력을 키우기도 하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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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영희씨(90)와 딸 김영숙씨
올해 70살이 되신 따님, 김영희씨가 어느날 어머니의 소원을 전해주시더군요. 지금처럼만 지내시다 제 품에서 행복하게 인생을 마무리 하고 싶다고 하셨대요. 쑥부쟁이교실에는 박할머니와 같은 경증치매어르신 9분이 열심히 기억을 놓치지 않으려고 애쓰고 계십니다.

저희 기관은 노인종합복지관이다 보니 일반 어르신들도 많이 이용하십니다. 치매 환자분들만 따로 모아 보호받는 환경보다는 일반 어르신들과 섞여 지내는 환경이 모두에게 아주 유익하다는 걸 요즘 새삼 깨닫습니다. 치매어르신들과 일반 어르신들이 수시로 로비와 화장실에서 마주치고 대강당에서 전체 회원을 대상으로 열리는 프로그램도 함께 들으면서 변화가 일어납니다. 어르신들은 따로 격리됐다는 생각에서 벗어나 활기를 찾고 일반 어르신들은 치매하면 극단적인 모습만 떠올렸던 편견을 깰 수 있기 때문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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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증치매어르신들이 자원봉사자들의 도움을 받아 덧셈과 뺄셈 연습을 하고 있다.
여든살의 김형상 할아버지는 쑥부쟁이 교실에선 '반장님'으로 통합니다. 셈도 잘하시고 수업내용을 잘 따라하니 주변 할머니들로부터 이제 그만 졸업하라는 얘기를 듣곤 합니다. 할아버지의 사교성은 남다르세요. 점심식사가 끝나면 교실에 머물지 않고 여럿이 모이는 커피자판기 앞에서 사람들에게 말을 걸죠. 신문도 꼭 챙겨보십니다. 얼핏 보면 치매를 앓고 계신 환자 분이라는 게 상상이 안 갈 정도에요.

4년 전 김할아버지가 복지관을 찾았을 때의 모습이 눈에 선합니다. 백발이 성성하고 늘 츄리닝 차림으로 다녔습니다. 지팡이도 짚고요. 요즘은 그 모습을 어디에서도 찾아 볼 수 없습니다. 머리는 곱게 염색하고 매일같이 양복을 깔끔하게 다려 입고 오십니다. 운동을 열심히 한 덕분에 짚고 다니던 지팡이도 내려놓았습니다. 놀라운 변화가 아닌가요?

주간보호프로그램은 경증치매 어르신들이 가족과 이웃이라는 공동체 안에서 얼마나 잘 지낼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좋은 사례입니다. 생명보험재단이 전국 12곳에서 운영하는 주간보호프로그램에 지금까지 월 평균 177명, 총 2124명의 어르신들이 다녀 가셨는데요, 이 분들 중 70.1%가 이상증상이 다소 줄었습니다. 또 보호자의 98.9%는 심리적인 안정감을 찾은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2014년 구재관 연성대학교 사회복지과 교수팀이 효과성을 분석한 결과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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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술치료는 정서적 안정과 인지적 수행능력을 향상시키는데 도움이 된다
생명보험재단이 지난 20일 광명시와 협약해 광명시노인종합복지관에 ‘기억건강학교’를 열기로 했으니, 경기도 내에서 어르신들이 갈 수 있는 주간보호센터가 의정부와 동두천, 광명시등 3곳으로 늘겠네요. 하지만 전국 곳곳의 경증치매 어르신들이 이용하기에는 아직 많이 부족합니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 따르면 등급외 치매노인 즉 장기요양보험 혜택을 받지 못하는 경증치매 어르신이 아직도 16만 명(2014년12월 기준)에 이른다고 합니다.

하지만 복지 사각지대의 어르신들께 민간이 먼저 손내밀자 정부도 지원을 늘리고 있습니다. 지난해 7월부터는 보건복지부가 노인장기요양보험 치매등급을 5등급으로 확장해 그동안 지원을 받지 못하던 경증치매환자 6000여명이 혜택을 받을 길이 생겼어요. 제가 속한 의정부시만도 약 1년 사이에 100명이 넘는 어르신들이 특별등급의 혜택을 받으셨지요. 이 분들은 월 76만 원 정도의 범위 내에서 ‘인지형 활동 프로그램’을 주3회 또는 월 12회 이상 이용하실 수 있게 됐습니다.

그러니 치매에 걸렸다고 너무 애통해 하지 마시고 적극적으로 치료를 받기 시작하세요. 가까운 보건소에 달려가 도움을 청하세요, 각 지방자치단체에 마련된 치매지원센터의 문을 두드리세요. 길은 있습니다.

저는 짬 날 때마다 경로회관을 돌며 어르신께 치매진단을 받으시라고 권합니다. 그런데 대부분의 어르신들이 별로 반응하지를 않으세요. 치매는 예방이 최우선인데 말이죠. 갈 길이 멀어 보이죠?

저는 매년 연말이면 희망의 현장을 목격합니다. 바로 치매어르신들의 발표 무대에요. 어르신들이 그동안 배운 내용들을 무대에서 공연하고 나면 늘 객석은 눈물 바다를 이룹니다. 안쓰럽거나 슬퍼서가 아니에요. 보호자들은 부모님들이 진지하게 무대에 서는 모습을 보며 흐뭇해서 울고, 직원들은 어르신들의 기억력을 보며 안심해서 웁니다. 예쁜 치매로 오래 사는 일, 불가능한 일만은 아니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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