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승강장 추락 노인 구하고 홀연히 사라졌던 20대 '사회적 의인'

[쿨머니, 이웃집산타]<2>생명을 선물한 산타 김영택 ·이정욱 씨

광주=백선기 머니투데이 쿨머니 에디터| | 12/19 08:21 | 조회 55539

사람들은 생면부지의 사람이 위기에 처했을 때 두 가지 행동패턴을 보인다. 구하거나 말거나…. 선택의 순간, 이로 인해 내 생명이 위태로울 수 있다면 더욱 마음이 복잡해진다. 누구에게나 생명이란 그 무엇과도 바꿀 수 없는 소중한 것이니까.

지하철 선로 바닥에 한 노인이 쓰러져 있다. 취기에 발을 헛디뎌 1.5m 아래로 추락한 것이다. “워메 어쩔까나?” 승객들은 발을 동동 구르면서도 선뜻 내려가기가 겁난다. 열차가 언제 덮칠지 모를 상황이고 승강장에 대기중이던 승객은 대부분 중년의 여성이거나 노인들 뿐이었다. 지난 6월2일 낮 1시반 광주광역시 도시철도 1호선 쌍촌역에서 벌어진 상황이다.

계단을 내려오던 한 청년이 노인을 발견하곤 어깨에 둘러 맨 가방을 벗어던지더니 선로로 뛰어들었다. 이를 본 또 다른 청년이 따라 내려가 노인을 순식간에 안아 올렸다. 조마조마한 순간을 지켜본 승객들은 청년들에게 소리친다. “학생 빨리 올라가, 얼릉 올라가!”

두 청년은 아무런 일도 없었던 듯이 서로 제 갈 길로 향했다. 이름도 연락처도 남김없이 말이다. 다행히 이 장면은 마침 승강장에 서있던 한 방송국 직원의 휴대폰 동영상에 고스란히 잡혔다. 쌍촌역 관계자는 사라진 두 청년을 찾아 나섰고 동영상은 SNS를 통해 급속히 번져나가면서 얼마 후 이들의 존재가 드러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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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험을 무릅쓰고 선로에 떨어진 노인을 구한 용감함 청년 김영택(오른쪽)씨와 이정욱(왼쪽)씨

겸손의 미덕보다는 SNS를 통해 자신의 존재감을 드러내는데 익숙한 요즘, 생면부지의 사람을 구조하고도 이내 사라져버린 아름다운 청년들의 뇌구조가 궁금했다. 사고역 부근 커피숍에서 그들을 만났다.

두 청년은 지난 17일 생명보험사회공헌재단(이하 생명보험재단)이 타인의 생명을 구조하기 위해 헌신한 일반인과 국가봉사자(경찰관,소방관)들을 발굴해 포상하는 ‘사회적 의인상’을 받았다. 직장인 김영택씨(27)와 대학생 이정욱씨(27)가 그 화제의 주인공들 중 하나다.

◇ 젊은 의인들, "따져볼 것 없었다, 몸이 먼저 반응했다"




이씨는 당시 전화통화를 하고 있었다. ‘쿵!’하는 소리에 놀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쪽을 바라보니 한 노인이 바닥에 쓰러져 있었다. 그는 “순간 몸이 얼어붙었다”며 “누군가 급하게 뛰어내려가는 걸 보고 무작정 따라 내렸을 뿐 먼저 뛰어내린 사람이 진짜 영웅이다”라고 상대방을 치켜 세웠다.

김씨는 “정욱씨가 서 있던 자리는 기둥에 가려 노인을 발견하기 어려운 위치였고 난 계단을 내려오던 중이라 상황이 한 눈에 들어와 먼저 내려갔을 뿐”이라며 겸손해했다. 혼자서는 힘든 상황이었다며 누군가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더 큰 사고로 이어질 수도 있었다면서 함께 해준 이에게 고마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이들은 모두 사고지점 반대편에서 뛰어내려왔다. 그들은 특별히 대담함을 가진 성격의 소유자이기라도 한 걸까?

생면부지 타인의 어려움 앞에서 두 사람은 모두 본능적으로 반응했다. 머릿속으로 무언가 이해득실을 따지지 않았고 오로지 구해내야한다는 한 가지 생각뿐이었다. 사고를 수습하고 나서야 자신이 선 위치가 선로바닥임을 깨닫고 부리나케 올라갔고 뛰어내리고 구해드릴 때까지는 무서운 줄 몰랐다고 말했다.

제일 먼저 뛰어내렸던 김씨는 “지하철을 타고 학원으로 가는데 몸이 떨리고 가슴도 콩닥거렸다면서 그제야 내가 죽을 수도 있는 상황이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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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이정욱씨가 당시의 사고 상황을 설명하고 있다. 두사람이 서있는 곳이 사고지점이다.


노인을 구조하는 데는 당시 역사에서 일하던 공익근무요원 이지혁 씨(23)도 한 몫 했다. 그는 소집해제를 불과 며칠 앞둔 상황이었다. 청년 3명은 모두 처음 본 사이였지만 구조에는 일사불란한 모습을 보여줬다. 한명은 위에서 잡아당기고 아래 2명은 할아버지를 안아 올리면서 구조는 순식간에 끝났다.

의자에 앉아 안정을 취한 85세 노인 이모씨는 출동한 119 구급대원의 도움을 받아 병원으로 옮겨졌다. 승강장에서 이 상황을 지켜보던 중년여성들과 어르신들이 “젊은이들이 아니었으면 어쨌을꼬”라고 탄식하는 소리가 동영상 속에서 흘러나왔다.

◇ 구조 후 학교로, 직장으로…휴대폰 동영상 없었으면 묻힐 뻔한 선행

그들은 한결같이 자신의 행동을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노인으로부터 감사의 인사라도 받았느냐고 묻자, 두 청년은 '보름 뒤 곧 퇴원한다’며 ‘고맙다’는 전화를 주셨는데 그때는 이미 자신의 행동이 기억 저편으로 사라져가고 있었다고 했다. 그들은 당연히 해야 할 일을 한 것 뿐인데 연신 고맙다는 인사를 받으니 무척 쑥쓰러울 뿐이라며 겸연쩍어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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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정욱(25)


대학생 이씨는 2분여가 지난 후 도착한 다음 열차를 타고 곧장 학교로 갔다. 그 열차를 타지 않았더라면 지각할 뻔 했다고 했다.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직장인 김씨는 선행을 한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어르신이 안정을 찾고 119 구급대원이 오자 서둘러 자리를 떴다. 휴대폰에 찍힌 동영상이 아니었더라면 이들의 선행은 묻힐 뻔 했다.

이씨는 나이가 두 살 많은 김씨를 형이라 불렀다. 그 사건 이후 종종 만났느냐고 묻자 김씨는 “밥 한번 같이 먹으려 했는데 바삐 살다보니 그만 연락을 못했다”라며 다소 미안해하는 기색을 내비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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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영택(27)

광주시청도 선행을 행한 두사람을 표창했다. 단지 상장과 상패뿐 이었지만 이씨는 책상 앞에, 김씨는 책꽂이에 상장을 소중히 올려놨다. 두 사람은 누군가를 구해냈다는 뿌듯함만으로도 행복해 했다.

“생명이란 게 물질로 살 수 없는 것 아닌가요? 그런 기회가 제게 주어진 게 감사할 뿐, 제가 아니어도 다른 누군가가 그 일을 해냈을 것입니다."

◇ "다시 같은 일 벌어져도 또 뛰어내릴 것"

이씨는 2남 3녀 중 장남이다. 홀어머니 아래 그리 넉넉하지 않은 집안의 장남은 어렸을 적 어려운 이웃을 보고 지나치지 못하는 어머니를 보고 투덜거렸다고 한다. 우리 집도 어려운데 왜 남에게 살림살이를 갖다 주느냐고 말이다.

그는 “어머니는 우리가 없어도 더 어려운 사람들을 구해야 한다고 하셨다”며 “처음엔 이해가 안됐지만 지금은 이해가 된다면서 돕는 만큼 다시 돌아오는 것 같다”라며 웃었다. 꼭 물질적으로 되돌아오는 것이 아니라 다양한 모습으로 말이다.

김씨는 군복무를 전투경찰로 했다. 군 시절엔 특별한 잘못을 하지 않았는데도 선임들한테 당하는 후임을 보면 뒤에서 다독거려줬다. 역지사지라고 그 심정을 잘 이해할수 있었기 때문이라고 했다.

만일 이번 사고와 같은 일이 또 벌어진다면 어떻게 할것이냐고 묻자 김씨는 “나는 뛰어내릴 것 같다, 아니 뛰어내려 구조해야만 한다”면서 자신의 신념은 할 수 있는 한도 내에서 남을 최대한 돕는 일이라고 덧붙였다.

“내가 능력이 많으면 많을수록 더 많은 사람을 도울 수 있지 않을까요? 선한 일을 하라는 성경의 말씀을 몸으로 실천하고 또 전파하는 일을 하고 싶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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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사를 함께 한 이유일까 두사람은 호형호제를 하며 가까운 사이가 됐다


예기치 않았던 사건사고 앞에서 우리는 여태껏 아무런 인연이 없었던 사람들로부터 도움을 받는 가슴 뭉클한 경험을 한다. 이 경험은 남의 어려움을 외면하지 않고 한 걸음에 달려가도록 하는 불쏘시개 역할을 한다.

위기와 마주쳤을 때 스스로 선한 용기를 마음속으로부터 끄집어 낸다. 아마도 용기란 타고 나는 것이 아니라 그렇게 길러지는 건가 보다.

[팁]생명보험재단 등 공익단체들, 사회적 의인 선정해 시상

지난 7월 경남 마산역 앞에서는 한 여고생이 교통사고 차량에 깔리자 지나가던 시민 20여명이 달려들어 1.5톤 무게의 차량을 들어 올렸다. 10월에는 선로에 떨어진 시각장애인 여성을 40대 남성이 배수로로 피신시켜 귀중한 생명을 건졌다. 우리는 이들을 ‘사회적 의인’이라 부른다.

사회적 의인이란 사회의 보편적 이익이나 모든 사람의 이익을 위해 옳고 바른 일을 한 사람을 일컫는다. 때론 남을 위해 자신의 생명을 기꺼이 내어놓는다. 이들은 큰 보상을 바라지도 않고 마땅히 해야 할 일을 했다는 자부심으로 살아간다.

국내에선 생명보험재단, 참여연대 공익지원센터, 공익법인 LG복지재단이 의인상을 수여하고 있다. 생명보험재단은 각종 사고구조 과정에서 헌신한 사회적 의인 91명을 선정해 총 3억 원의 상금을 전달했다. 2009년부터 7년 동안 총 466명에게 20억4000만 원의 시상금이 지급됐다. 생명보험이 지향하는 생명존중 문화를 확산시키고 생명사랑의 가치를 높이는 데 귀중한 공적을 남긴 의인들과 그들의 희생정신을 격려해 준다는 취지다.

사회적 의인상을 받는 소방관과 경찰관들 중에는 유달리 유가족이 대신해 받는 경우가 많다. 국민안전처에 따르면 2012년 기준 일 년 동안 예측할 수 없는 사고를 당한 사람은 7322명에 이른다. 이들을 돕기 위해 소방관들은 평균 21분 18초마다 사건현장으로 출동한다. 그리고 한해 평균 7명의 소방관이 현장에서 눈을 감는다.

불과 보름 전에도 서해대교에서 화재를 진압하던 이병곤 소방관이 낙하한 교량 케이블에 가슴을 맞아 순직했다. 의인들은 한결같이 평소에도 남을 위한 마음을 아끼지 않았다. 순직한 이 소방관도 25년 경력의 베테랑 소방관으로 숱한 인명을 구조했다. 개인적으로 틈틈이 불우이웃을 찾아 생필품을 전달했고 노모를 모시며 살던 효자였다.

올해 참여연대 공익지원센터는 신분상의 불이익을 감수하고 부당한 인사개입문제를 신고한 전북 소방안전본부장 심평강씨와 충암고 급식비리를 제보한 교사 등 4명을 의인으로 선정하고 상패와 함께 부상으로 100만원의 상금을 전달했다.

LG복지재단은 서해대교 화재 순직 소방관에게 의인상을 수여하고 유가족에게 1억 원을 전달하기로 했다. 의인상은 국가와 사회정의를 위해 몸을 사리지 않는 평범한 이웃들의 숭고한 정신을 기리는, 한 사회의 작은 정성의 표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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