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짝꿍 사귀는 '동구밭' 임팩트투자 받은 사연

[쿨머니, 우리 동네 히든챔피언]<8>서울 성동구 소셜벤처 '동구밭'

백선기 머니투데이 쿨머니에디터| | 02/13 07:39 | 조회 8600

평소엔 날씨에 무관심한 진우 씨(가명 23)는 금요일 밤이 되면 달라진다. 일기예보를 꼭 챙겨본다. 잠들기 전 머리맡에는 손때 묻은 장화와 장갑을 놓아둔다. 소풍을 앞둔 아이처럼 내일을 기다린다.

토요일마다 진우 씨는 다른 발달장애인 친구들과 함께 텃밭에서 짝꿍인 대학생봉사자들을 만난다. 일주일 동안 기다렸던 순간이다. 호미와 낫 등 도구를 안전하게 사용하는 법을 배우고 쌈 채소, 허브, 고추, 오이·방울 토마토 같은 작물을 심고 가꾸며 이야기 꽃을 피운다.

진우 씨에게 행복한 토요일을 선물한 사람들은 도시농업으로 발달장애인의 자립을 돕는 소셜벤처 ‘동구밭’(www.donggubat.com)이다.

◇자립의 첫 단추는 ‘직업훈련’이 아니라 ‘어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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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구밭지기'프로그램은 발달장애인과 대학생봉사자가 1:1 짝궁을 맺어 진행된다.

동구밭에서는 짝궁 끼리 서로 이름을 부르거나 형·오빠·누나라 부르며 허물없이 대한다. 노순호 동구밭 대표(25)는 동갑내기 짝꿍이 6개월이 지나도록 자신의 이름 대신 계속 '선생님'이라 부르자 부모와 면담을 요청했다가 가슴 아픈 이야기를 들었다.

“26년 동안 선생님 이외에는 비장애인과 어울려본 적이 없는데 당신이 선생님이지 어떻게 친구라 느껴지겠어요?”

그랬던 짝궁이 7개월째 접어들면서 드디어 '순호'라고 그를 불렀다. 눈도 마주치지 않으려 했던 장애인들은 서로에게 안부를 묻고 자신의 일이 끝나면 옆 친구가 끝내지 못한 일을 도와줄 정도로 달라졌다.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고등학교를 졸업한 발달장애인들의 친구숫자는 1.3~1.6명으로 2명에 못 미친다. 이중 1명은 같은 장애를 가진 친구다.

이에 비해 동구밭에 다니는 발달장애인들은 1년이 지나자 친구가 평균 3.9명으로 늘었고 이 가운데 1명은 비장애인들로 채워졌다. 하루 중 사교시간도 0.6%에서 15%까지 늘어났다.

어떤 일을 하든지 두세 달을 넘기지 못하고 직장을 그만 두었던 미영 씨(가명 22)에게도 변화가 생겼다. 퇴직이 반복될 때마다 부모는 “우리 애는 안되는가 보다”라고 절망했다. 미영 씨는 동구밭을 다닌 이후 1년 넘게 한 프렌차이즈 음식점에서 서빙일을 하고 있다.

미영 아버지는 손으로 꾹꾹 눌러쓴 감사의 편지를 동구밭에 보냈다. 편지엔 “미영이의 낯가림이 줄어 들었다, 미영이에게 정말 필요했던 교육은 기술보다는 사회성임을 깨달았다”고 씌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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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순호 '동구밭'대표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은 어렵게 취업을 해도 근속 개월이 다른 장애인의 10%에도 못 미친다”며 “장차 어떤 직업을 갖게 되든 지속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먼저 사회성을 길러야 한다”고 강조했다.

노 대표가 함께 하고 있는 강동텃밭의 장애인 4명은 모두 1년 넘게 직장을 다닌다. 시립도서관의 사서로, 커피 로스팅, 음식점 그리고 포장업무에 종사하고 있다.

◇ 고교졸업 후 발달장애인 67.6%가 집안에서만 생활

동구밭은 비즈니스 모델로 사회문제를 해결하고자 하는 대학생 동아리 ‘인액터스’에서 출발했다. 홍익대학교 학생 4명이 의기투합한 미션은 ‘도시농업을 통해 청년발달장애인들의 사회적 고립문제를 해결하자’는 것이다.

2011년 보건복지부 통계에 따르면 고교졸업 후 가정에 틀어박혀 생활하는 발달장애인들은 67.6%에 이른다. 노 대표는 “단 1명의 발달장애인일지라도 삶의 변화를 가져올 수 있다면 가슴 뿌듯한 일이라 생각하고 시작했다”라고 말했다.

이들은 2014년 강동구 상일동에 100㎡ 규모의 텃밭을 분양받아 이 지역에 거주하는 발달장애인 5명과 함께 첫 농사를 시작했다. 우여곡절도 많았지만 6개월이 지나자 입소문이 퍼지면서 다른 서울지역에서 잇달아 요청이 쏟아졌다.

그렇게 퍼져나간 텃밭은 불과 2년여 만에 은평·종로·마포·강서·동작·용산·도봉·노원·중랑·강동·송파·성동 등 12개 지역으로 늘어났다. 그동안 프로그램에 참여한 발달장애인 수는 80명이 넘었고 거쳐간 대학생 봉사자수는 100명이나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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송파구 KT건물 옥상에 마련된 텃밭은 크라우딩펀드를 받아 이뤄졌다.


◇ 현장 중심 '동구밭지기' 프로그램 산학협동으로 발전

동구밭은 텃밭을 책임지는 '동구지기장' 1명과 평균 5명의 발달장애인과 1:1 짝궁을 맺은 대학생봉사자들이 한 팀으로 구성된다. 이들은 봄과 가을 분기별로 매주 토요일마다 3시간에 걸쳐 텃밭을 매개로 다양한 프로그램을 운영한다.

프로그램의 운영비용은 지자체와 발달장애인단체, 뜻있는 기업에서 50%를 부담하고 프로그램에 참여하는 개인들이 나머지 50%를 부담하는 방식으로 운영된다. 연간 운영비는 텃밭 1개당 500만 원으로 1인당 월 개별부담금은 약 6만 원 선이다.

텃밭에서 농사짓는 기술을 배우는 건 기본이다. 모종 심기에서부터 방제 그리고 수확에 이르기까지 전 과정을 체험한다. 지역별로 영화·음악·사진·그림·댄스·과학 ·요리 등 주제를 정한 뒤 텃밭을 배경으로 다양한 활동을 펼친다. 오감을 자극하는 놀이를 통해 인지능력을 향상시키고 기부활동도 체험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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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리를 테마로 진행중인 동구밭지기 프로그램에 열중하고 있는 참가자들


11월이면 수확을 마치고 추수감사절을 지낸다. 한 해 농사를 마무리 지으며 부모, 친구들을 텃밭으로 초대해서 같이 어울리면서 노는 흥겨운 파티다.

노 대표는 “발달장애인들은 짝꿍과 헤어지는 과정에서 상실감에 마음의 상처를 입기도 한다”면서 “헤어짐은 끝이 아니라 또 다른 만남의 시작이니 너무 슬퍼하거나 상처받지 말라는 내용을 녹여냈다”고 설명했다.

동구밭을 만든 대학생 4명은 법학과 디자인, 경영, 공학전공자로 특수교육이나 복지 분야와는 거리가 멀다. 그들은 이론적 배경의 부족함을 메우기 위해 현장에서 느끼는 발달장애인의 목소리를 프로그램개발에 최우선 순위로 두었다. 커터기가 달린 수확목걸이나 퍼즐식 모종 심기 교재 등 신선한 교재들이 개발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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발달장애인들은 텃밭에서 수확한 농작물을 직접 갖고 나와 동네장터에서 판매해 수익을 올리기도 한다.


‘동구밭지기’라 불리는 텃밭 프로그램은 학계에서 큰 호응을 얻었다. 노 대표는 교구와 교재를 감수 받으러 연세대학교 보건과학대학 작업치료학과 정민예 교수를 만났다가 뜻밖의 제안을 받았다. ‘동구밭지기’프로그램이 요즘 작업치료분야에서 새롭게 전개되는 이론과 흡사하다며 산학협동을 추진해보자는 것이다.

동구밭은 실전에서 터득한 생생한 경험을 공유하고 정 교수는 발달장애인에 대한 이론적 지식과 사후 평가 방법을 지도해주며 시너지 효과를 얻고 있다.

◇임팩트 투자 유치 성공…전국으로 텃밭운영 확산 발판 마련

동구밭은 지난해 연말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로부터 임팩트 투자를 유치했다. 투자조건 상 금액은 밝힐 수 없지만 동구밭 모델의 확산이라는 꿈에 마중물은 부어줄 만한 규모다. 노 대표는 우선 올해 부천시에 2곳을 증설하고 일산·분당지역 등 경기도 권역으로 나아갈 계획이라 말했다.

동구밭을 지켜나가는 또 하나의 버팀목은 뜻을 함께 하는 사회적 경제조직들이다. ‘강동도시농부’의 최재일 대표는 농사일이 서툰 동구밭 식구들을 위해 작물이 잘 자랄 수 있도록 노하우를 전수하고 있다. 덕분에 수확량이 늘어나면서 발달장애인들이 수확한 쌈채소를 포장해 동네 장터에서 팔 수 있었다.

사회적기업 ‘머시주스’와는 콜라보레이션을 통해 천연비누를 생산한다. 머시쥬스가 착즙 후 생긴 찌꺼기를 제공하면 발달장애인들은 상추와 케일 바질을 말려 천연 비누를 만든다. 완성된 비누는 머시주스에서 판매되고 수익금은 ‘동구밭’의 운영비로 쓰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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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회적기업 '머시쥬스'와 협업해 발달장애인들이 만든 천연비누


업력 3년차인 노대표는 현재 동구밭의 발달장애인 80명 가운데 10%인 8명은 농업에 관심이 많고 기술도 좋다며 이들을 하루빨리 자체 고용할 수 있도록 회사의 규모를 키우는 것이 꿈이다. 노 대표는 동구밭의 경쟁력을 묻자 젊음을 꼽았다.

“우리는 젊어요. 장차 무엇이 될지 아무도 모릅니다. 동구밭을 거쳐간 대학생봉사자들이 사회 각계각층에서 장애인에 대한 편견을 깨고 어울림이란 가치를 퍼뜨려 나간다면 지금의 작은 몸부림이 언젠가는 큰 변화를 몰고 오지 않을까요?”

[팁] ‘착한 기업’ 키우는 임팩트 투자를 아세요?

임팩트 투자(Impact Investment)란 투자수익과 함께 사회에 대한 영향력(Social Impact)를 함께 추구하는 투자를 말한다. 환경·복지 등 사회 문제를 효과적으로 해결하는 기업을 발굴해 투자하기에 ‘착한 투자’라고도 불린다.

동구밭은 지난해 9월 SK행복나눔재단이 실시한 ‘세상 임팩트투자공모전’에 선발돼 비즈니스모델 점검과 맞춤형 코칭을 제공받고 투자자들 앞에서 피칭할 기회를 얻었다. 그 결과 지난해 12월 ㈜카이스트청년창업투자지주로부터 임팩트 투자 유치에 성공했다.

세상 임팩트 투자공모전은 연 매출 3억 원 미만 '스타트업'과 연 매출 3억 원 이상 혹은 설립 3년 이상 성장기 사회적기업, 소셜벤처를 대상으로 진행된다. 선정된 기업에게는 초기사업비 지급과 IR캠프, 데모데이를 통해 기업들이 투자금을 끌어 모을 수 있도록 집중 지원한다.

국내 대표적인 임팩트 투자자로는 SK행복나눔재단· 함께일하는재단·디쓰리쥬빌리(D3jubilee)· 한국사회투자· 임팩트스퀘어·에스오피오오엔지(Sopoong)가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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