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물 뿌리면 새싹 돋는 '종이정원' 세계시장 도전

[쿨머니, 우리 동네 히든챔피언]<9>전주 협동조합 ‘온리’

전주=백선기 이로운넷 쿨머니 에디터| | 02/27 08:16 | 조회 1763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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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드 한 귀퉁이 씨앗이 들어있던 자리에 싹이 돋아나 자라고 있는 모습

카드나 엽서의 한 모퉁이에서 새싹이 돋아난다. 마술의 세계가 아니라 실제 상황이다. 카드에 물만 적셔주면 약 2~7일이 지나 새싹이 돋아난다. ‘종이정원’이라 불리는 수제카드 이야기다. 카드의 원재료는 재활용이 안 돼 쓰레기봉투로 직행하는 폐지이다. 폐지로 만든 업사이클링 제품으로 세계시장을 겨냥하고 있는 협동조합 ‘온리(www.cooponre.com)’의 김명진 이사장(45)을 만났다.

세계 유일 업사이클링 씨앗수제카드 '종이정원'

전라북도 전주시 완산구 향교길 전주한옥마을을 걷다 보면 종이에서 피어난 식물들이 지나가는 사람들의 발길을 붙잡는다. 가게 문을 열고 들어서자 카드를 화분 삼아 피어난 식물들이 한눈에 들어오고 새 생명을 기다리는 카드들이 빽빽이 꽂혀 있다. 카드에는 축하와 위로의 말을 건네는 따뜻한 글과 그림들이 수 놓여 있다.

종이정원은 일자리를 찾아 한때 고향을 등져야 했던 전주 청년의 지역사랑에서 출발했다. 김명진 협동조합 온리 이사장은 서울의 한 게임회사를 다니다 희망제작소와 아름다운가게를 거치면서 환경과 지역공동체의 중요성에 눈을 떴다.

협동조합 ‘온리’는 ‘온 고을의 되살림’이란 뜻을 품고 있다. 사회적 미션은 지역공동체와 함께 하는 비즈니스로 지역의 고유한 가치와 환경·전통을 보존하고 이웃을 돌보는 것이다. 김 이사장은 4년 전 고향에 들렀을 때 한옥마을 기념품 시장 규모가 1000억 원이 넘는데도 테디베어 같은 생뚱맞은 제품들이 많이 눈에 띄는 걸 보고 귀향을 결심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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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명진(45) 협동조합'온리'이사장이 싹이 돋아난 씨앗수제카드에 물을 주고 있다.

씨앗을 품은 카드의 모티브는 네덜란드의 ‘카드를 키워라(Grow Card)’, 영국의 ‘씨앗 폭탄(Seed Bomb)’에서 따왔다. 하지만 이들과 달리 ‘온리’는 버려지는 파쇄 종이를 한지 제작 방식과 씨앗 수경재배기술로 되살려 발아율이 99%에 이르는 세계 유일의 업사이클링 씨앗 수제카드를 탄생시켰다.

'종이정원'에서 자라는 씨앗은 자운영 꽃과 알팔파·청경채·비타민 등 4종이다. 지난해부터는 전북대 농과대학과 산학협력을 통해 허브랑 자생종·멸종 위기종을 중심으로 100여 종의 종자연구개발을 마쳤다. 이 씨앗들은 육종과 발아테스트를 거쳐 상품화될 전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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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거된 폐지는 한지제작방식과 수경재배기술이 합쳐져 씨앗수제카드로 거듭나는데 약 3주의 시간이 걸린다.


폐지 2톤으로 2만 장 제작... 전 과정 ‘친환경’

카드 원료는 사무실 등지에서 분쇄기로 잘려 재활용되지 못하고 쓰레기봉투에 버려지는 폐지(파쇄종이)를 이용한다. 카드 1장에 들어가는 폐지의 양은 약 2g. 연간 20만 장 정도를 생산하는데 약 2톤의 폐지가 쓰인다.

‘종이정원’은 폐지를 불려 종이를 뜨고 씨앗을 심어 눌러서 건조시킨다. 전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카드 위에 인쇄되는 글씨와 그림은 오스트리아에서 수입한 특수 친환경 잉크로 독성이 거의 없다. 김 이사장은 여기에 전주의 명물 ‘한지’의 색을 담았다.

카드는 특수한 인쇄기법을 이용해서 씨앗을 틔우는 과정에서도 글씨나 그림이 번지거나 지워지지 않는다. 종이를 뚫고 나온 새싹은 그대로 놓고 즐겨도 되지만 수경재배하면 석 달은 충분히 싱싱한 잎을 즐길 수 있다. 흙에 옮겨 심으면 더 크게 키울 수도 있다. 수제카드 한 장의 가격은 3000원대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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싹이 돋아난 카드는 수경재배하면 3개월은 충분히 식물을 즐길 수 있다.


취약계층 위한 든든한 일자리, 소외 이웃 위한 유연한 일거리

온리는 사회적기업이자 직원조합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 다중 이해관계자 협동조합이다. 조합원 수는 21명으로 정직원 15명 가운데 12명이 취약계층이다. 저소득층·시니어·새터민과 다문화가정의 이주여성이 함께 일한다. 볼펜 심 끼워 넣기나 폐지 줍기 같을 일로 월 10만 원을 채 벌기 어려웠던 어르신들은 이곳에서 생산직으로 일하며 시급 7000~7500원을 받는다.

‘온리’에는 계약직 공동작업장이란 독특한 작업 형태가 있다. 서류상으로는 취약계층이 아니지만 장애인 가족을 돌보느라 주 40시간씩 일할 수 없는 사람들처럼 실질적으로 소외된 이웃을 위한 일자리다. 이들에게 일할 수 있는 공간을 제공해주고 형편껏 작업한 만큼 임금을 준다. 매출이 연중 고르게 발생하지 않는 회사의 특성상 변동 사항에 유연하게 대응할 수 있고 정규직에 따른 고정비 상승의 부담을 던다는 장점이 있다. 지금까지 30여 명의 근로자가 거쳐 갔다.

카드의 디자인 개발에는 전북지역의 영세한 작가 11명이 참여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영세한 지역 작가들은 자존감 하나로 버텨가는 분들”이라며 “저작권료 수입뿐 아니라 작품을 통해 시민들과 소통하는 장을 마련해 침체된 지역의 문화시장을 살리는데 기여하고 싶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제작된 카드 디자인은 총 550여 종이다. 이 가운데 400종이 지역 작가의 작품이고 나머지는 명화와 한국 민속화 중 저작권이 풀린 것들이다. 캘리그래피 분야는 경력단절 여성들이 주축이 된 ‘글꼴유랑단’과 함께 작업하고 있다. 김 이사장은 온리가 지출하는 금액의 90%가 지역 안에서 순환되고 있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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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수제카드 디자인은 550여종으로 이가운데 400여종이 지역작가들의 작품이다.


지출금액 90% 지역 순환, 협동조합 상호거래로 사회적경제 시장 키워

온리는 지역 경제뿐 아니라 협동조합 간의 상호거래로 시너지 효과를 올리고 있다. 6개 협동조합이 뭉친 이른바 ‘작은 몬드라곤 프로젝트’다. 김 이사장은 협동조합끼리 연대의 중요성에 대해 힘주어 말했다.

“내 물건만 팔 생각을 하지 말고 조합들 스스로가 윤리적 제품과 서비스를 서로 구매해야 합니다. 그래야 협동조합이 지속 가능하고 결국 우리 시장의 파이가 커집니다.”

협동조합 온리의 매출은 급성장세를 보이고 있다. 2013년 1200만 원에 불과했던 매출은 2014년에는 1억2000만 원으로 10배 뛰었고 지난해에는 메르스로 대형 축제들이 전격 취소돼 직격탄을 맞았음에도 불구하고 2억 원의 매출을 달성했다. 그사이 공장 규모도 6.6㎡에서 165㎡로 확장됐다. 2013년 ‘순천만 국제정원박람회’와 ‘대한민국친환경대전’ 등 굵직한 행사에 기념엽서로 채택됐고 사회적기업 스타 상품으로도 이름을 올렸다.

김 이사장은 “손글씨가 적힌 수제카드는 아날로그적 감성을 가진 마음을 움직이는 연결 매체”라며 “식물을 정성스레 키우는 과정에서 카드를 자주 바라다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이보다 더 좋은 고객 감성마케팅은 없다”고 강조했다. 덕분에 이 카드는 기업 홍보용으로 인기가 많다. 전체 매출의 70%가 B2B 형태로 이뤄지고 있다. 기억을 남기고 싶은 예비부부들한테는 청첩장으로도 인기 만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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씨앗수제카드는 물에 젖어도 글이나 그림이 지워지지 않아 박람회장이나 기념행사용 카드로 인기가 높다.


적정기술 활용으로 생산량 증대

온리의 올해 목표는 해외 바이어들과의 교류 증진을 위해 서울에 직매장을 열고 대량생산체제를 갖추는 일이다. 온리는 지난해 중국에서 300만 장의 주문 요청을 받았지만 거절할 수밖에 없었던 아픈 추억이 있다. 카드 완성에 3주가 걸리는 현재 생산공정과 인원으로는 물량을 댈 수가 없기 때문이다.

김 이사장은 LG 소셜펀딩을 통해 LG전자 명장들의 도움을 받아 최근 시간을 단축하고 힘도 덜 들어가는 작업도구를 개발했다. 그는 이 도구들을 활용하면 기존의 생산량을 2배 이상 늘릴 수 있고 몸이 불편한 장애인들도 작업할 수 있을 것이라 기대했다.

온리는 강원도 정선군청의 요청에 따라 제2생산 공장 설립을 추진하고 있다. 정선군청은 폐광으로 일자리를 잃은 주민들의 일자리 창출과 도박중독자들의 재활의지를 심어주는 데에 온리의 사업모델이 제격이라고 판단했다. 만일 제2공장이 완성되면 연 100만 장의 생산도 거뜬하리라는 전망이다.

'혼자' 보다 '모두'가 잘사는 길

폐지를 활용한 수제카드 제조 기술은 김 이사장이 귀향 후 골방에 틀어박혀 6개월 동안 인터넷과 씨름하며 독학으로 일궈낸 산물이다. 이 과정에서 무리가 와 지금도 인대와 손목이 불편하다. 많은 사람들이 김 이사장에게 묻는다고 한다. 혼자서 힘겹게 일궈낸 성과물을 왜 협동조합으로 풀어내려고 하는지 말이다.

김 이사장은 아름다운가게에서 자원봉사하는 사람들을 보면서 삶의 전환점을 맞았다고 했다. 그는 “전문직 종사자들이 토·일요일이면 자원봉사로 인형에 솜을 넣는 등 허름한 일들을 하면서도 밝고 행복해하는 모습을 보면서 ‘어떻게 살 것인가’라는 화두에 답을 얻었다"라고 한다.

“내가 혼자 소유하면 얻을 수 있는 성과가 10인데 나눔으로써 1000의 성과를 만들어 낸다면 훨씬 더 많은 사람들이 행복한 사회가 되지 않을까요?”

김 이사장이 협동조합을 통해 실현시키고 싶은 가치다.

[팁] '작은몬드라곤'프로젝트란?

협동조합 온리의 홈페이지는 ‘미디어콘텐츠창작자협동조합’이 제작했다. 해외바이어를 위한 영문 서류제작이 필요하면 온리는 ‘번역협동조합’에 의뢰한다.

‘온리’를 비롯해 미디어콘텐츠 창작자협동조합·번역협동조합(transcoop.net)·이풀약초협동조합(ipool.kr)·잉쿱영어교육협동조합(engcoop.com)·돌아봄사회복지협동조합(dorabom.net)·협동조합공작소(coopcomm.net) 등 6곳은 '작은몬드라곤' 프로젝트 멤버다.

이들은 2013년 함께일하는재단이 주최한 '협동조합비즈니스 모델구축 지원사업 공모전'에서 처음 만났다. 분야는 제각각이지만 1년 동안 부대끼며 얻은 결론은 연대의 필요성이다. 협동조합을 위한 협동조합으로 서로 협력해 더 큰 시너지 효과를 얻자는 데에 목표를 두고 있다.

머리를 맞대고 합의한 협약서에는 사업연대와 상호부조·협업기금 마련·상호거래플랫폼·상호직원연수에 관한 내용을 담고 있다. 이들의 최종목표는 성공적인 협동조합의 모델로 손꼽히는 이탈리아의 몬드라곤 협동조합처럼 되는 것이다. 이들은 지난해 첫 사업으로 홍보마케팅과 협동조합 관련 콘텐츠 제작과 배포를 위한 공공 TV사업을 진행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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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은몬드라곤프로젝트'는 서로 다른 분야의 6개 협동조합이 연대해 시너지효과를 높여보자는 상생을 위한 실험적 모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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