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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각장애인은 안마사” 편견 깨고 국제무대 진출한 음악가들

[쿨머니, 우리 동네 히든챔피언]서울 수유동 사회적기업 한빛예술단

정혜선 쿨머니 에디터| | 04/09 14:30 | 조회 4929

2003년 어느 날, 한 맹학교 교장한테 초등학교 5학년의 한 소년이 찾아왔다. 아이는 “악기를 연주하며 살고 싶다”고 말했다. 막 트럼펫을 배우기 시작해 음악에 빠진 아이는 평소에도 입버릇처럼 “죽는 순간까지 트럼펫을 불고 싶다”고 말하곤 했다.

교장은 난감했다. 교장처럼, 아이도 시각장애인이었기 때문이다. 당시 시각장애인들은 대부분 안마사로 취업했다. 이 세상에 보지 않고 해낼 수 있는 일이 많지 않았다. 아이는 이 사실을 알고 있었으면서도 ‘평생 연주자’라는 불가능해 보이는 꿈을 이뤄달라고 교장한테 매달리고 있었다. 교장은 어린 소년의 꿈을 허투루 듣지 않고 가슴에 새겼다.

교장은 시각장애인 공연단체이자 사회적기업인 한빛예술단(www.hanbitarts.co.kr)의 단장이 됐고, 소년은 그 곳의 트럼펫 연주자가 됐다. 김양수(50) 한빛맹학교 교장과 트럼펫주자 윤석현(25) 씨 이야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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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예술단 단원들은 클래식 한곡을 연주하려면 악보를 모두 외워야 한다.


◇ 전 단원이 오케스트라 악보를 통째로 암기…완벽한 화음의 비결

봄기운 넘치던 3월 28일 오전 11시, 서울 중구 정동 산책로에 밝고 경쾌한 클래식 선율이 퍼졌다. 이른 점심을 먹으러 나온 직장인, 봄볕을 만끽하기 위해 덕수궁 돌담길 주변을 걷던 사람들이 삼삼오로 선율을 따라 정동제일교회로 들어섰다.

연주자는 한빛예술단의 브라스앙상블이었다. 악기들의 정교한 하모니 속에 두 시간여의 고전음악 연주가 끝난 후, “무조건, 무조건이야” 하는 트로트곡이 피날레를 장식했다. 관객들은 들썩이며 손뼉을 치고 노래를 시작했다. 윤 씨의 트럼펫 소리는 관객들의 흥을 더욱 돋웠다.

사전정보 없는 관객들은 시각장애인의 연주라는 걸 눈치 채지 못하도록 연주는 조화롭고 흥겨웠다. 그런데 다른 일반 공연과 다른 점이 하나 보였다. 모든 단원들이 귀에 꽂은 수신기였다. 시각장애인인 단원들은 악기를 연주하면서 수신기로 지휘자의 지시를 듣고 있었다. 역시 시각장애인인 지휘자는 피아노를 연주하며 놀라운 집중력으로 지휘를 위한 지시를 병행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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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예술단 단원들은 클래식 한곡을 연주하려면 악보를 모두 외워야 한다.

천성애 한빛예술단 사무국장은 “장애인 연주자가 비장애인보다 더 혹독한 연습을 한다”고 귀띔했다. 악보를 볼 수 없기 때문이다. 단원들은 손가락 끝을 이용해 점자 악보를 읽거나 귀로 곡을 들으며 오케스트라 악보를 통째로 외운 뒤에야 실제 연습에 들어갔다. 합주를 위해 본인의 부분뿐 아니라 다른 부분까지 모두 외워야 하모니를 완성할 수 있기 때문이다.

김양수 단장은 “곡 하나를 완벽하게 연주하기까지 정말 피나는 노력이 필요하지만, 무대 위에서 연주가 끝나고 관객들의 박수를 받을 때 느끼는 그 희열감 때문에 단원들은 멈추지 않는다”고 말했다.

◇ 시각장애인 연주가가 월급 받는 단체를 만들기까지

지금 상황에 이르기까지 김 단장은 많은 시도와 노력을 거듭했다. 2004년엔 전문연주자 양성을 위한 음악전문대학과정을 한빛맹학교에 신설하고 유수의 전문가들을 영입했다. “시각장애인이 어떻게 연주자가 될 수 있겠냐”는 우려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그래도 밀어붙였다.

현실은 역시 냉혹했다. 1기 학생들이 졸업해 취업하려고 하자 받아주는 예술단체가 없었다. 김 단장은 포기하지 않았다. 그때까지 아마추어 예술 단체였던 한빛예술단을 재정립해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을 채용했다. 윤 씨를 비롯한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의 꿈이 현실이 되던 날이었다.

“연주자가 되기 위해 달려온 학생들이 실업자가 될 위기에 놓였을 때 시각장애인 연주자들에게 월급을 줄 수 있는 단체를 직접 만들어야겠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이 절대 쉽지 않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취업이 안 돼 실망감에 빠진 시각장애인 학생들을 생각하면 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김 단장은 “시각장애인의 직업은 안마사라는 공식을 깨고, 연주자가 되고 싶어 하는 시각장애인들에게 자아성취의 기회를 만들어줬다는 점에서 한빛예술단이 의미하는 바가 크다”고 했다. 윤 씨는 “주어진 재능을 발휘하면서 안정적으로 생활할 수 있는 곳이 있다는 것에 항상 감사하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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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빛예술단 단원들은 클래식 한곡을 연주하려면 악보를 모두 외워야 한다.

한빛예술단은 2010년 장애인 문화예술단체로서는 국내 최초로 사회적기업 인증을 받았다. 현재 관현악단인 한빛오케트스라, 관악단인 윈드오케스트라, 브라스앙상블, 현악앙상블, 체리티합창·중창단, 타악앙상블, 팝밴드블루오션 등 8개 팀의 단원 50명이 모두 시각장애인으로 구성됐다. 이들은 모두 한빛예술단의 정직원이다. 이렇게 단원 모두가 장애인으로 구성된 예술단체는 국내에서 한빛예술단이 유일하다.

◇ 미국 케네디센터,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국제적 실력으로 사회공헌

음악성도 인정받았다. 연주자들의 꿈인 미국 워싱턴 케네디센터 무대에도 섰다. 2011년 일이었다. 지난해 7월에는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에서 열린 ‘제8회 국제장애인페스티벌’에 초청됐다. 세계 정상급 교향악단으로 꼽히는 상트페테르부르크 필하모닉과 함께 한 무대였다. 당시 페스티벌의 총책임자였던 발레리야 소콜로바는 “모든 단원이 시각장애인인 오케스트라는 전 세계에서 한빛예술단이 유일무이할 것”이라 한빛예술단의 음악 수준을 높이 평가했다.

한빛예술단의 음악은 이제 또 다른 취약계층에 희망을 주고 있다. 특히 질병과 장애로 자살을 생각하는 사람들에게 시각장애인 연주단의 완벽한 연주는 그 자체가 희망의 메시지였다. 김 단장은 한 병원에서 환우들과 가족을 대상으로 공연한 날을 잊을 수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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희귀난치성질환 환우돕기 신년음악회 모습.


“반응이 그 어느 때보다 뜨거웠어요. 장애인들의 연주에서 환자와 가족들은 ‘나도 할 수 있다’는 희망을 읽어내는 것 같았습니다.”

올해 초 한빛예술단은 자살예방센터와 협약을 맺었다. 연말에는 ‘세계 장애인날’을 기념해 UN 유럽본부에서 공연하겠다는 계획을 추진하고 있다.

◇ “단원 월급 10만원씩 깎아”…지원과 구매 절실

세계적으로 큰 인정을 받고 있는 한빛예술단이지만 운영에서는 여전히 어려움이 있다. 공연 특성상 성수기와 비수기가 뚜렷해 단원들에게 매달 급여를 지급하는 것은 반복되는 고민이다. 천 사무국장은 “매년 초 1년 공연 계획이 세워지는 게 아니기 때문에 모든 게 유동적”이라며 “여름에는 비수기고 가을이 성수기”라 말했다. 2014년 발생한 세월호 사건 이후엔 공연계획 자체가 많이 줄어 재정 어려움이 더욱 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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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양수 한빛예술단 단장


김 단장은 “한빛예술단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아 올해 단원들의 월급을 10만원씩 깎을 수밖에 없었다”며 “연말에 깎인 직원들의 월급을 보상해 줄 수 있을 만큼 꼭 올해 좋은 공연으로 많은 수익을 내고 싶다”고 말했다.

공연 수익이 곧 매출인 한빛예술단은 비수기와 불황을 대비한 자금 지원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천 국장은 “우리 같은 예술단체는 지원이 필수적”이라며 “지원을 통해 재정이 튼튼해져야 더 많은 장애인 예술가들을 육성하고 그들을 채용해 품고 갈 수 있다”고 했다.

또 다른 희망은 공공기관의 구매다. 지난 1월, 공연예술 분야는 처음으로 장애인 생산품 우선구매 대상에 선정됐다. 즉, 공연예술도 공공기관이 의무로 구매해야 하는 중증장애인 생산품에 포함된 것이다.

공공기관 구매가 늘어난다면 시각장애인들이 지금보다 조금 더 안정적으로 연주자로서의 삶을 이어갈 수 있게 될 날이 올까. 한빛예술단처럼 재능으로 뭉친 장애인 사회적경제조직이 늘면 30만 명에 이르는 국내 시각장애인들이 저마다 각자의 꿈을 이룰 수 있는 날이 올까.

김 단장처럼, 윤 씨처럼, 꿈을 포기하지 않았던 사람들은 안다. 인디언기우제가 그렇듯, 희망은 씨를 뿌린 후 기다리는 자들에게 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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