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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기이하게 산 오동나무, 여든살 청춘

이경숙 머니투데이쿨머니팀차장| | 06/08 05:36 | 조회 205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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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를 둘러싼 현실이 관뚜껑처럼 무겁게 느껴지는 사람은 인천 참외전로 172-41 창고로 가자. 창고 같은 그곳 실내에서 경외감을 일으키는 생명체 하나를 발견할 것이다. 내벽에 붙인 목공예품처럼 보이는 나무줄기, 죽은 듯 살아 있는 오동나무다.

바닥과 벽 사이 간신히 난 틈에서 자라난 나무는 벽돌을 하나하나 쥐고 구불구불 창틀 위까지 올라 양철 지붕으로 뚫린 구멍으로 나가더니 잎사귀들을 무성하게 뻗쳐놨다. 아이 얼굴만치 크고 푸른 잎들은 그 아래 줄기와 뿌리가 처한 열악한 환경에 아랑곳없이 바람이 불자 햇빛을 튕겨내며 까불거린다.

지난 5일 이의중 건축재생공방 대표가 꾸린 '동인천건축탐험대'는 인천역 인근 근대건축물들을 둘러보고 참외전로의 전시공간 ‘잇다스페이스’로 갔다. 80여년 전엔 소금창고였고 일제시대엔 여성전용한증막, 15년 전까진 골목 서점이었던 이곳은 지난해엔 폐허였다.

정희석 잇다스페이스 대표는 자신의 목공예품을 쌓을 창고를 찾아 인천 골목을 헤매다 지쳐 담벼락에 잠깐 등을 기댔다가 이 곳 나무와 인연을 맺었다. 담배 피다 슬쩍 열어본 창고 안엔 지붕까지 침대, 찬장 따위 온 동네 쓰레기가 쌓여 있었고 어두운 실내를 더듬어 들어가자 가냘픈 새 잎 하나가 난데없이 마른 줄기에서 돋아 있었다고 했다. 정 대표는 그걸 보고 “아, 여기다” 했다. 작품 창고 대신 전시장을 만들었다. 공예가였던 그는 인천의 다른 예술가들에게 무료로 전시공간을 공유하는 공익적인 전시 사업을 하게 됐다.

그는 밖에 ‘엄마나무’가 따로 있다며 일행을 옆집과 함께 쓰는 담장으로 이끌었다. 시멘트 바닥 위로 여자팔로 한 아름은 됨직한 그루터기가 솟았고, 그 위에 날 선 도끼가 놓여 있었다. 땅 위로 드러난 뿌리마다 도끼질 자국이 선명했다. 지금도 도끼질을 해줘야 한단다. 옆집 민원 때문이다. 오래전 베인 오동나무에서 뿌리가 계속 자라 옆집 구들장을 계속 들어 올린단다.

뿌리와 줄기를 끊긴 나무는 시멘트로 뒤덮인 땅 아래를 더듬다가 깨진 지붕 사이로 떨어지는 햇빛과 빗물을 찾아내 줄기를 뻗었을 것이다. 그 좁은 지붕이 뿌리에 다시 잎사귀를 올릴 기회, 다시 청춘을 줬다. 나이테가 일흔몇개 넘게 쌓인 나무일지라도 잎사귀는 새 봄마다 나온다. 새 청춘이다. 그 잎들이 오동나무의 정체를 드러낸다. 생명성을 발현한다.

다시 청춘을 찾아 사회적 경제 영역에 들어오는 베이비부머들이 꽤 많다. 어떤 청년들은 스펙 쌓기와 무한경쟁의 논리를 피해 청춘을 다르게 살고 싶다는 생각으로 들어온다. 더러는 실망하고 더러는 상처 받는다. 사회적기업, 마을기업, 협동조합도 기존의 경제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는 조직 중 한 형태다. 한국 경제 생태계가 안은 한계에서 완전히 벗어나긴 어렵다.

한국의 사회적 경제는 잇다스페이스의 오동나무와 닮았다. 삶을 발현할 기회가 없던 이들이 찾아낸 작은 틈새다. 사회적 경제라는 틈새에서 다시 청춘 혹은 다른 청춘을 찾으려 하기 전에 먼저 할 일이 있다. 내가 살고 싶은 삶이 뭔지, 만약 모른다면 그걸 깨닫게 해줄 환경은 어떤 건지, 그 삶을 함께 만들어 갈 동료는 누군지, 발견해내는 것이다.

동인천탐방 프로젝트를 기획한 이의중 대표는 그걸 찾아 활동의 근거지를 서울에서 인천으로 옮겼다. 국토연구원에서 연구자로서 한계를 느낀 그는 회사를 그만두고 서울 북촌에서 사회적기업을 준비했다. 그러다 계획을 바꿨다. 자신의 뜻을 실현할 곳으로 인천을 선택했다. 인천은 원도심의 개발이 진행되지 않아 품격 있는 대저택과 근대건축물이 남아 있었다. 그는 1920년대 얼음창고로 쓰였던 벽돌건물을 재생해 아내와 카페를 열고, 인천막걸리 ‘소성주’ 회장집이던 한옥으로 이사했다. 재즈클럽 '바텀라인', 청년문화기획자 등 이웃과 함께 '동인천건축탐험' 같은 동네행사를 기획했다.

그는 뜻 맞는 건축가를 모아 30년은 더 건축재생에 몰입하고 싶단다. 그에게 건축재생이란 다음 세대에 기회를 주는 것이다. 100년 된 건물을 무너뜨리고 새로 지으면 30년 후의 세대는 30년 된 낡은 건물을 물려받게 된다. 하지만 이전의 역사와 흔적을 존중해 재생하면 후세는 130년의 인문을 담은 유산을 물려받게 된단다.

건축물만 그렇지는 않을 것이다. 죽은 듯 사는 사람 누구에게나 존중할 만한 역사와 재생할 가치가 있다. 상처 혹은 과오가 있었을지라도 그게 그의 뿌리요 인문이다. 다른 삶, 다른 청춘은 거기서 뻗어 나올 것이다. 현실의 구들장을 들어 올릴 힘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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