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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경주 여진, 그후 골목에선

이경숙 기자| | 09/21 07:29 | 조회 4901

이번엔 웃음이 나왔다고 했다. 지진 발생 후 399번째 여진이 일어난 19일 저녁. 경주 사람들은 짐 보따리와 아이들을 메고 끌고 공원으로, 공터로 나왔다. 다들 피난길이 익숙해 보였다. "아빠가 웃으니까 7살, 10살 아들들도 긴장을 풀더라고요." 전화기 저편, 이상운 경주서라벌찰보리빵 점장의 목소리는 담담했다.

여진 다음날, 이 점장은 여느 때처럼 오전 10시에 점포를 열고 청소를 시작했다. 한 시간 후 할머니 직원들이 출근했다. 여느 때와 달랐던 건, 손님이 안 온다는 것뿐. 인근의 원전이 안전한지, 아닌지는 언론 보도에서나 들리는 뉴스였다. 골목 상인들 사이에서 더 큰 뉴스는 어느 학교가 경주 수학여행을 취소했다더라, 어느 단체가 행사를 보류했다더라, 따위였다.

경주의 골목상권 경기는 거의 반토막이 났다. 서라벌찰보리빵 1호점 매상도 지난해 이맘 때와 비교하면 3분의 1이 줄었다. 추석 전에 반짝 떴던 경기는 지진에 여진이 이어지면서 다시 죽었다.

이 점장은 “가게 연 후 11년 지나도록 이렇게 걱정된 적이 없다”고 말했다. 예전엔 경기가 좋지 않아도 주말 장사로 먹고 살 수 있었다. 올해 들어 이게 없어졌다. 포항, 부산, 울산에서 주말 관광 오던 손님들이 끊겼다. 조선업 구조조정 탓이다.

주문이 줄어들자 지난 7월엔 할머니 직원들이 먼저 나서서 “근무일을 하루씩 줄이자”고 제안했다. 7, 8월 두 달 동안 할머니들은 한 주에 이틀만 나와 일했다. 할머니들의 근무일은 9월 들어 다시 정상화됐다. 매상은 회복되지 않았지만 급여가 줄어든 채 3개월이 넘어가면 어르신 집안 살림이 어려워질까봐 이 점장 등 운영진이 근무 정상화를 제안했던 것이다.

서라벌찰보리빵은 경주시니어클럽이 노인일자리를 만들려고 운영하는 점포다. 점포 두 곳에서 하루 4시간씩 주3일 일하는 방식으로 65세 이상 어르신 22명이 일하고 있다. 1명 일자리를 10~12명이 나누고 있는 셈이다. 그래서 운영진은 불경기에도 최대한 일거리를 유지하려 애쓴다.

점포 중 한 곳은 올해 들어 심각한 적자 상태다. 더도 덜도 말고 작년 매상만 되어도 더 바랄 게 없겠다면서, 이 점장은 "더 발전하고 싶은 욕심이 없진 않지만" 하고 말끝을 흐린다.

27세였던 그가 결혼해 아들 둘 낳으면서 12년 동안 일궈온 터전, '늘 첫 출근인 듯' 일 하는 법을 매번 배워야 하는 어르신들도 웃으며 출근할 수 있는 일터. 그들의 기반이 지금 흔들리고 있다.

경주를 흔들었다는 양산단층처럼 그들은 우리와 이어진다. 땅이 단층과 단층으로 이어지듯 경제에선 산업과 산업, 시장과 시장이 포개지며 이어진다. 포항·울산·부산에서 시작된 조선업의 여진은 지금도 경주를 흔들고 있다.

저편이 계속 흔들리는데, 이쪽이라고 안 흔들릴까. 이어진 시장에선 흔들리는 쪽부터 챙겨야 다른 쪽의 안정도 유지된다. 문득, 지난 명절에 인사하지 못했던 얼굴들이 떠올랐다. 찰보리빵을 주문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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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쿨머니팀장, 이로운넷 공동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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