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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 보는 세상]기이한 ‘아이쿱’ 스캔들

이경숙 기자| | 11/09 06:29 | 조회 6233

스캔들. 매우 충격적이고 부도덕한 사건. 또는 불명예스러운 평판이나 소문을 뜻한다. “대통령 스캔들 때문에 한국이 경제스캔들을 잊었다”고 한 미국 주간지 ‘비즈니스위크’의 지난주 기사처럼, 통상적으로는 스캔들을 일으킨 사람이 주어로 쓰인다. 또, 문제의 핵심이 단어에서 드러난다. 최순실의 미르재단 사유화, 박근혜 정부 국정 개입 의혹은 ‘최순실게이트’라 불린다.

지난 2일, 관행을 벗어난 제목의 기사들이 방송사, 인터넷매체에서 쏟아져나왔다. 경찰이 개인비리로 기업 전직 간부를 구속 수사할 땐, 처음엔 기업명을 익명 처리해주는 게 관행이다. 비리 보도로 기업 브랜드가 입는 타격이 크기에 이 정도의 매너는 기자들도 지켜준다. 그런데 이번 기사들은 달랐다. ‘아이쿱생협 간부가 수산물 납품 대가로 17억 원 챙겨’ 등 제목으로 회사명을 강조했다.

이날 늦은 오후 아이쿱생협사업연합회의 사과문이 전국 180개 매장과 온라인 사이트에 게재됐다. 이틀 후 연합회는 감사부가 사건 진상을 더 명확히 규명해 관리 감독 책임을 묻고 뇌물수수로 조합원들에게 피해가 있었는지 밝히겠다는 등 추가 대책을 발표했다. 부패·비리 방지책 등 인사시스템 혁신방안 마련도 약속했다. 그런데 네 번째 대책이 특이했다. ‘언론은 공정하게 사실을 보도해 주길 바랍니다.’

'사실'만 요약하자면 이렇다. 물품 총 책임자 김씨가 17억1000만여 원을 뇌물로 받았다. 그는 배임수재 혐의로 부산 경찰청에 구속됐다. 수산물 납품 계약을 유지하는 대가로 10여년 간 납품액의 3~5.5%를 리베이트로 준 모 가공업체 대표도 함께 구속됐다. 리베이트를 준 다른 도매업체 대표는 불구속 입건됐다.

이 정도 내용이라면 ‘아이쿱’이 아니라 ‘모 생협 간부’라 써야 한다. 왜 이번엔 달랐을까. 부산 경찰청이 회사명을 밝힌 탓일까? 최순실이 모든 보도의 블랙홀이 되어버린 와중에 기자들이 보기엔 ‘모 생협 간부’보다는 윤리적 소비를 모토로 한 ‘아이쿱’이란 브랜드가 제목으로 더 섹시했던 것일까?

아이쿱은 소비의 윤리를 알리며 23만7600여 명의 조합원을 모았다. 지난해엔 친환경, 공정무역, 사회적기업 등 윤리적 생산품을 팔아 5256억 원의 매출을 냈다. 아이쿱 구례자연드림파크는 국회의원, 해외 인사들에게 사회적경제 성공사례로 인기 있는 견학 코스였다.

이 때문에 이번 기사는 협동조합, 사회적기업 등 사회적 경제계엔 최순실게이트 만한 충격을 줬다. 더 큰 충격은 임직원과 조합원들이 받았다. 아이쿱 한 간부는 “김 본부장이 몸이 아프다며 9월말에 퇴직했을 때만 해도 사내 평판이 좋은 편이었다”며 “68평 아파트에 살고 외제차가 있다는 건 우리도 보도를 보고 알았다”고 말했다. 그는 회사에서 ‘완벽한 이중 생활자’였단다.

아이쿱이 다시 신뢰를 얻을 수 있을까? ‘스캔들’ 이후에도 조합원 구매액은 크게 떨어지지 않았다. 연합회는 7일 긴급 이사회에 이어 9일 전국대표자회의를 소집하며 대응책 마련에 부산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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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니투데이 쿨머니팀장, 이로운넷 공동대표

어쩌면 이번 일로 더 단단한 조직 기반이 다져질지도 모르겠다. 자사 임직원 사이의 과잉신뢰, 매너에 벗어난 보도가 더 이어지지 않는다면 말이다. 일본의 ‘코프 고베’는 2004년 직원 2명이 전표를 위조해 3억9000만 엔을 착복하는 사건이 벌어졌지만 내부제보 등 시스템을 보강해 지금은 해외 생협 직원들의 견학 코스 중 하나가 됐을 정도로 다시 신뢰와 명성을 찾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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