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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2병· 만성질환도 물리친 도시농업의 매력

[쿨머니,우리 동네 히든챔피언] 서울 금천구 ‘건강한농부협동조합’

백선기 이로운넷 쿨머니에디터| | 01/14 08:48 | 조회 7755

지난해 겨울, 서울 금천구 한울중학교에서는 이색 행사가 열렸다. 이 학교 학생과 학부모 20여명이 학교 텃밭에서 정성들여 기른 배추와 무를 뽑아 즉석에서 김치를 담갔다. 한마음으로 양념을 버무리고 절인 배추에 속을 넣으며 웃음꽃을 피웠다. 학부모 이명란 씨가 말했다.

“우리 아이들은 중2병 걱정 안 해요. 요즘 인성교육을 강조하는데 텃밭을 만들고 가꾸다보면 자연스럽게 길러져요. 장애인 친구들을 배려해주고 힘든 일은 서로 도와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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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울중학교 학부모들로 구성된 목공예 동아리 한울나무 회원들이 교내 옥상텃밭에 설치할 평상을 색칠하고 있다./사진제공=건강한농부협동조합

이 씨는 이 학교의 목공예 학부모동아리인 한울나무 회원이다. 이들 회원 9명은 지난해 마을기업 ‘건강한농부협동조합’과 함께 텃밭을 직접 설계하고 제작했다. 자유학기제를 맞아 많은 학생들이 거들었다. 나무로 틀을 짜고 평상을 만들고 화분에 흙을 퍼나르고 씨앗을 뿌리는 등 전 과정을 선생님과 학부모 아이들이 함께 했다. 농사는 유기농법으로 지었다. 텃밭 재료비는 학교가 부담했다.

교내 텃밭 조성을 총괄 지휘한 마을기업 ‘건강한농부협동조합’은 지역에서 도시농업 전도사로 통한다. 삭막한 도시에서 흙과 작물, 사람이 어우러지는 유기농업의 순환적 가치를 알리고 누구나 쉽게 도시농업을 실천 할 수 있도록 돕고 있다. 도시농업이 퍼져가면서 마을 구석구석에는 조용한 변화가 일어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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금천구 한울중학교에 마련된 텃밭. 이곳에서 재배한 무와 배추로 학생과 학부모들은지난 겨울 김치담그기 행사를 펼쳤다./사진제공=건강한농부협동조합


◇동네 어르신들의 활력소 '옥상텃밭'

올해 75살의 이희숙 할머니는 요즘 신바람이 난다. 이 할머니는 지난해 ‘건강한농부협동조합’이 개최한 옥상텃밭대회에서 최우수상을 수상했다. 옥상에는 아로니아와 상추, 블루베리, 대추, 오가피 등 다양한 작물이 자라나고 있다.

“우리 집이 동네 사랑방이야. 가축분뇨를 1년 동안 묵혀 퇴비로 만들어 이웃에 퍼주기도 하고 모종을 키워 동네 사람들과 나누기도 해. 우리땜 동네에 옥상텃밭이 5개나 더 생겼다니까.”

이 할머니는 관절염과 당뇨로 수년간 고생을 하고 있었지만 얼마 전 건강검진에서 의사로부터 칭찬을 들었다. 혈액검사에서 당뇨수치가 정상으로 돌아왔기 때문이다. 할머니는 몸이 불편해 먼 데 나갈 수도 없는데 매일 눈을 뜨면 옥상에 올라가 싹들이 자라나는 모습을 보면서 활기를 찾는다고 덧붙였다.

“얼마나 좋은지 몰라. 그 녀석들이 쑥쑥 자라는 모습을 보면 말이지.”

김선정 건강한농부협동조합 이사장은 “어르신들은 이미 나름의 방식으로 음식물로 퇴비를 만들거나 빗물도 재활용 하신다”며 “이런 생생한 정보와 지혜를 널리 알리고 싶어 대회를 연다”고 의미를 설명했다. 옥상텃밭대회는 3년째 이어지고 있다. 이 할머니는 상으로 받은 화분에 올 봄에는 어떤 모종을 사다 심을까 행복한 고민에 빠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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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집 옥상텃밭 뽐내기 대회 한 장면. 마을 주민을 대상으로 해마다 경연대회를 열어 텃밭가꾸는 노하우를 공유한다/사진제공=건강한농부협동조합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별별철학관'

서울 남부여성발전센터 앞에 둥지를 튼 건강한 농부협동조합 공간에는 별별철학관이라는 간판이 걸려있다. 특별한 아이들을 위한 특별한 교실로 ‘철이 드는 학교’란 뜻이다.

이 곳에선 학교에서 사회봉사 명령을 받은 아이들에게 목공기술을 가르쳐주고 텃밭 가꾸기를 하며 흔들리는 아이들의 마음을 다잡아준다. 지난해 6명의 아이들이 이곳을 거쳐갔다. 김 이사장은 “학교에서 늘 지각대장이던 아이들이 정시에 오고 100% 참석한다”며 “중간에 농땡이를 치지도 않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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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선정 건강한농부협동조합 이사장/사진=이우기 /사진제공=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별별철학관은 마을의 아이들은 마을에서 보듬어주자는 취지에서 시작됐다. 류경숙 금천교육복지센터장은 “그동안 지역에서 특별한 아이들을 받아 줄 기관이 마땅치 않아 관리가 어려웠다”고 털어놓았다. 그는 “마을기업이나 협동조합과 연결해 1대1로 아이들을 돌보는 프로그램을 운영하면서 큰 교육효과를 얻었다”며 “무엇보다 아이들의 자아존중감이 높아졌다”고 평가했다.

이같은 교육효과에 힘입어 금천교육복지센터는 별별철학관을 운영하는 교육장을 2년 사이에 6곳으로 늘렸다. 2015년 건강한농부협동조합을 시작으로 생태포럼과 마을카페 도서관 등 다양한 장소로 확대됐다.

류 센터장은 “그들이 살아갈 곳은 마을”이라며 “자기를 알아주는 어른이 몇 명 더 생겨나고 찾아갈 곳이 있다는 것은 굉장히 의미있는 일”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종례 때면 부르는 별별 송의 한 소절을 들려줬다.

“이제는 할 수 있지. 너를 위한 하루하루를 다시 오지 마. 이런 일로. 다시 다시 오지 마. 벌점으로.”

그 아이들 가운데는 다시 센터를 찾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이번에는 벌점 때문이 아니다. 자원봉사자로 찾아온다. 마을어른들을 만나면서 아이들이 철이 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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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강한농부협동조합이 운영하는 목공소 내부. 목공예와 텃밭가꾸기는 사회봉사명령을 받은 청소년들의 흔들리는 마음을 붙잡아주는데 큰 도움을 준다./사진=이우기/사진제공=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경력단절여성들에게 ‘일’을 찾아 준 텃밭

김 이사장이 도시농업에 눈을 뜬 것은 다니던 회사가 폐업을 하면서 경력단절이 된 이후다. 그는 뭐라도 배울 요량으로 도시농업지도사 과정을 수료했다. 하지만 도시에는 농사 지을 적당한 땅이 없고 강사 자리도 쉽게 나지 않았다. 그는 함께 과정을 수료한 사람들과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라는 비영리단체를 만들어 경력단절여성들을 위한 지속가능한 일자리를 스스로 개척해나갔다.

2012년 금천구 친환경 주말농장 한내텃밭을 위탁운영하면서 본격적인 텃밭농사의 경험을 쌓았다. 도시에서는 보기 힘든 16,529㎡ 규모의 너른 땅에 그동안 이론으로만 배웠던 다양한 지식들을 실천에 옮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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페트병으로 만든 화분. 도시농업네트워크는 아이들에게 생태농업의 의미와 노하우를 담은 다양한 체험활동을 제공해주고 있다./사진제공=건강한농부협동조합

“생태화장실도 만들고 육묘장도 만들고 지렁이 사육장도 만들었죠. 집에 남는 목공 도구를 가져와 작은 목공소도 갖췄어요.”

이 때의 경험은 2014년 발족한 건강한농부협동조합을 건실하게 꾸려가는 발판이 됐다. 도시농업네트워크 회원은 현재 125명이고 이들 중 16명이 분할해 협동조합을 꾸렸다.

협동조합의 주 수입원은 학교나 어린이집, 복지관 등 공공기관의 맞춤형 텃밭 조성이다. 텃밭이 만들어지면 그 후에 비료나 지주대 등 자재를 공급해 수익을 낸다. 지금까지 30여 곳의 공공기관에 텃밭을 만들었다.

지난해 매출은 1억여 원으로 큰 규모는 아니지만 금천도시농업네트워크와 진행하는 생태농업교육은 사업 지속성을 높여주는 강점이다. 이 교육과정은 원목 폐파레트를 이용해 화단을 꾸미거나 흙을 섞는 것부터 수확 후 요리까지 전 과정을 함께 하면서 참가자들에게 생태농업의 의미와 노하우를 전한다.

이 조합의 학교 텃밭 활성화 사업은 금천구 전역에 도시농업을 확대하는 데 큰 기여를 했다. 서울시민의 투표로 이뤄진 주민참여예산제에서 건강한농부 협동조합의 조합원들이 제출한 사업계획서가 2차례나 최종 선발됐다. 덕분에 총 4억6000여만 원의 예산이 금천구에 배정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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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흥일초등학교 옥상의 텃밭./사진제공=건강한농부협동조합


◇“가난해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 보장"

이들의 꿈은 빠른 시일 안에 농부카페 겸 매장을 여는 것이다. 대량으로 깔끔하게 키우지는 못해도 정직하게 재배된 지역의 텃밭 작물을 판매 할 수 있는 장을 열어주는 것이다.

“우리 동네에는 검증되지 않은 농산물들이 굉장히 많이 유입되요. 검열에 걸려 못 파는 채소를 덤핑해서 파는 곳이 많아요. 없는 사람들도 건강한 먹거리를 먹을 권리가 있지 않나요?”

김 이사장은 "생협에서 물건을 사기 어려운 저소득층과 자투리땅에서 길러낸 정직한 작물을 연결해 모두에게 도움이 되는 먹거리 문화를 만들겠다"는 포부를 말했다. 아직은 소규모이지만 조합원들이 수확한 작물을 가공해 그때그때 장터에 나가 직접 판매하며 소비자들의 반응을 점검해보고 있다. 어르신들이 지혜로 만든 친환경 퇴비를 판매하고 토종종자를 보급하는 일도 적극 추진할 계획이다.

“토종종자는 너른 밭에서 키우면 교잡돼 안 좋아요. 옥상이 딱 적당하죠. 작물을 잘 키우시는 어르신께 토종종자를 드리고 그걸 모종으로 내면 판매하려고 합니다. 토종 종자가 일반 종자보다 10배 이상 값어치가 있거든요.”

퇴비 만드는 할아버지, 채종하는 할머니의 모습은 상상만 해도 건강하게 느껴진다. 김 이사장은 "부자가 아니어도 행복하게 살 수 있는 법을 가르쳐주고 길을 터주는 일은 사회적으로 가치 있는 일"이라고 얘기한다. 그가 도시농업을 통해 이루고 싶은 마을의 모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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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합원들이 생산한 작물을 가공해 만든 각종 제품들. 당근사과잼, 모과청, 건여주, 고구마줄거리, 시래기등 다양하다./사진=이우기/사진제공=서울시사회적경제지원센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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