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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티 같은 전시회 가서 무이자할부로 '작품'을

[쿨머니,우리 동네히든챔피언] 신진 미술가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

백선기=이로운닷넷 기자| | 02/25 09:13 | 조회 9733

7년 동안 그래픽 디자이너로 활동한 정은혜 씨의 꿈은 화가다. 뒤늦었지만 다니던 회사를 그만두고 꿈을 좇아 지난해 ‘그림책 학교’를 졸업했다. ‘과연 그림만 그리며 먹고 살 수 있을까’ 막연한 두려움이 엄습했다. 그는 지난해 사회적기업 에이컴퍼니가 기획한 서울형 뉴딜 일자리 사업의 하나인 ‘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에 참여했다. 젊은 예술가와 소상공인을 1대1로 매칭해 주는 사업이다. 예술가들은 ‘일’을 경험하고 소상공인은 저렴한 비용으로 매장을 매력적으로 변신시켜 경쟁력을 키워보자는 프로젝트다. 19명의 예술가들이 31명의 소상공인 점포주와 8개월 동안 호흡을 맞췄다.

정씨는 은평구 응암동에 위치한 반짝반짝 사진방 최영교 대표와 파트너가 됐다. 최 대표는 당시 사진활동가 30여명과 함께 한 달에 한 번 그 일대 보육원 3곳을 돌며 아이들의 사진을 찍어 개인 앨범을 만드는 작업을 진행 중이었다. 정씨는 그 앨범에 아이들의 손과 발 도장을 찍고 앨범의 주인이 될 53명의 아이들의 초상화를 그려 넣었다. 이 작업은 뜻밖의 성과를 올렸다. 화가로서 경력이 전무했던 그는 에이컴퍼니로부터 개인전을 열자는 제안을 받았다. 정 씨는 “현재 열심히 그림만 그리면서 산다”며 “내 안에 자신감과 용기가 꿈틀대기 시작했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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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가게 전담예술가 사업으로 인연을 맺어 보육원 아이들의 성장앨범을 함께 제작한 최영교 반짝반짝사진방대표(우측)와 정은혜작가(좌측)/사진제공=에이컴퍼니

◇ 화랑 4곳 중 1곳은 '개점휴업'...신진작가 판로 없어

에이컴퍼니(www.acompany.asia)는 정 씨처럼 신진 작가들을 발굴해 키우거나 창작 환경을 개선해 예술가들의 자립을 돕는 사회적기업이다. 국내 미술 시장의 규모는 약 3249억 원. 하지만 화랑 4곳 중 1곳은 1년간 단 한 작품도 판매하지 못할 때도 있다. 예술경영지원센터가 2014년에 집계한 미술 시장 실태 조사 결과다. 그러다 보니 작가만으로 생계를 유지하는 사람은 거의 없다. 아르바이트는 기본이고 졸업 후 관련 없는 분야로 가버리는 사람도 많다.

에이컴퍼니는 신진 작가들을 위한 판로 개척이 시급하다고 진단했다. 서울 종로구 이화동 에이컴퍼니가 운영하는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가 그 전초 기지다. 카페를 방문하면 한 켠에 미나리하우스 멤버십 작가 50여명의 작품을 정리한 포토폴리오 파일이 빽빽하게 꽂혀있다. 고객들은 포토폴리오를 통해 작가의 상세한 정보를 얻고, 원하는 그림을 구매할 수 있다. 이 곳에는 최저 8만 원에서 최고 수백만 원에 이르는 다양한 가격대의 그림을 구경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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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페에는 회원작가들의 포토폴리오가 비치돼 작가에 대한 모든 정보를 한눈에 볼 수 있다.

미술가 박노을씨는 “일반 갤러리는 전시회가 열리는 기간에만 작품을 팔 수 있는데 비해 포토폴리오 덕분에 연중 어느 때라도 판매의 길이 열려 좋다”고 말했다. 박 씨는 소소하지만 작품들이 팔린다고 귀띔했다.

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는 “보통 영화나 책을 사는데 한 달에 3만 원 정도는 쓰지 않느냐”며 “그만큼만 미술에 꾸준히 투자하면 누구나 컬렉터가 될 수 있다”고 강조했다. 미나리하우스에서 가장 많이 팔리는 작품의 가격대는 50만 원~100만 원 선이다. 에이컴퍼니는 일반인들이 작품을 보다 쉽게 구입할 수 있도록 신용카드 무이자 10개월 할부 서비스를 제공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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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지연 에이컴퍼니 대표/사진제공=에이컴퍼니

그는 “일반인들에겐 미술이 너무 비싸고 멀리 있다고 느껴지고, 작가는 직업인으로서 좌표를 잃고 주눅이 들어있다”며 “대중과 작가가 쉽게 접근할 수 있는 통로를 만들어 주는 것이 우리의 역할이다”고 전했다.

에이컴퍼니는 매년 미나리하우스 멤버 작가로 활동할 신진 작가를 모집한다. 기준은 크게 세가지다. 경력이나 학벌은 따지지 않는다. 철저한 작가주의 정신과 그림의 완성도 그리고 사람들과 소통할 의지가 얼마나 있느냐를 중요한 요소로 본다.

◇ 파티 같은 전시회 '브리즈아트페어' 출품작 30% 이상 판매

미나리하우스는 예술의 문턱을 낮추기 위해 건물 곳곳에 작가와의 소통 공간을 심어 놓았다. 그 예가 화장실 벽화다. 에이컴퍼니는 작가들에게 6개월 단위로 작업실을 무상으로 빌려준다. 작가가 바뀔 때 마다 화장실에는 입주 작가의 작품이 그려진다. 그 아래에는 ‘작가에 대해 더 알고 싶으면 맞은편 작가의 방문을 두드려보세요’라는 안내 문구가 적혀있다. 장난스런 문구에 쑥쓰러워하던 사람들은 긴장감을 풀고 작가의 방을 찾아가 허물없는 대화를 나누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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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나리하우스에 마련된 아티스트를 위한 작업실./사진제공=에이컴퍼니


2015년 입주작가였던 나유림씨는 이 벽화 덕분에 작품을 의뢰받는 행운을 안았다. 화장실에 그려진 나 작가의 화풍이 마음에 든다며 한 식당 주인이 나 작가에게 매장의 빈 벽을 채워 줄 것을 부탁하기도 했다.

작가와 관객간의 소통의 결정체는 에이컴퍼니가 2012년부터 매년 열고 있는 브리즈아트페어다. 맥주와 음악이 어우러지는 파티같은 분위기 속에 작가들이 내내 전시장을 지키며 관람객들에게 그림을 설명하고 질문에 응해준다. 작가들도 관객의 반응을 실시간으로 관찰해 다음 작품에 영감을 얻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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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16년 브리즈 아트페어/사진제공=에이컴퍼니


자유분방함과 친절함 때문일까. 4회째를 맞은 브리즈아트페어는 지난해만 총 2800여명의 관객이 찾아왔다. 작품 공모 경쟁률도 4대1이 넘었다. 출품작의 30%가 넘는 124개의 작품이 8000만 원에 판매됐다. 지난 5년간 이 박람회를 통해 함께 활동한 작가 수는 450여명에 이르고 3억5000만 원의 작품이 팔렸다.

사람들은 거창한 이유로 그림을 선택하지 않는다. ‘그냥 좋아서’라든지 ‘우리 집 거실에 잘 어울린 것 같다’는 식이다. 생애 처음으로 작품을 파는 작가들도 많고 처음으로 그림을 구매하는 관객들도 많다. 거래가 성사되면 ‘팔렸다’, ‘축하한다’며 서로 박수를 쳐주는 광경이 심심치 않게 벌어진다.

에이컴퍼니는 작가와 관객 뿐 아니라 작가들 사이의 유대감 형성에 신경 쓴다. 예술가들은 모래알처럼 흩여져 지내는 작가들 사이에 진한 동료애를 느끼게 해줘 고맙다는 반응이다.

◇ 미술시장을 작가와 관객의 품으로 '공정미술'

이처럼 자유로운 분위기와 달리 창사 이래 에이컴퍼니가 반드시 지키는 깐깐한 수칙이 있다. 바로 공정미술이다. 미술품 가격을 공개하고 계약서를 반드시 작성한다. 작품보증서도 발행한다. 미나리하우스 멤버십 작가 박노을씨도 최고의 좋은 점으로 투명성이라고 강조했다.

“ 모든 거래는 계약서를 근거로 이뤄져요. 많은 갤러리들이 구두계약을 하는 데 문제가 발생하면 책임 소재를 따질 때 작가들이 애로사항이 많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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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 내부. 평균적으로 100만원 이하대의 작품이 가장 많이 팔리며 무이자 10개월 할부 구매도 가능하다./사진제공=에이컴퍼니


에이컴퍼니는 거래하는 모든 작품에 가격표를 붙인다. 일반 갤러리에서는 보기 드문 모습이다. 정 대표는 “가격표시제는 합리적인 가격임을 입증하는 고객과의 약속”이라고 지적했다. 작품가격은 1년 단위로 재조정된다. 정 대표는 작품 가격을 공개하지 않는 관행들이 미술시장의 신뢰를 무너뜨리는 주요 요인이라고 지적했다. 작품 가격이 공개되는 것만으로도 예술 작품 구매에 대한 심리적 거리감을 좁힐 수 있다는 주장이다. 그는 스포츠에서 페어플레이 정신이 있듯이 미술계에서도 공정한 유통문화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 미술유통업계의 ‘YG엔터테인먼트’를 꿈꾼다

에이컴퍼니는 작가들이 그림 판매만으로 수익을 올리는 데는 한계가 있다고 보고 점차 사업을 다각화하고 있다. 경기도 분당에 위치한 IT 업체 휴맥스 아트룸 전시공간을 2년째 위탁 운영하며 신진 작가들의 판로를 넓히고, 대기업들의 사회공헌 프로그램에 미술을 접목시키는 활동을 한다.

작품이 기업의 상업 광고나 제품 디자인 등에 이용되도록 다리를 놓는 역할도 하고 있다. 이미지를 패턴화해 쿠션이나 다이어리 등 다양한 생활용품을 만들어 부가가치를 높이기도 한다. 에이컴퍼니는 회원 작가들과 정식 매니지먼트 계약을 체결하고 상업 계약을 대행한다. 정 대표는 “앞으로 아트매니지먼트 분야에서 YG같은 회사가 되는 것이 꿈”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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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시 이화동에 위치한 그림가게 미나리하우스 전경/사진제공=에이컴퍼니

에이컴퍼니가 발굴해 첫 전시회를 작가는 지금까지 5~6명이다. '우리가게 전담미술가' 프로젝트로 오는 7월 생애 첫 전시회를 여는 정은혜 작가는 요즘 자신의 심정을 이렇게 표현했다.

“ 제게도 희망이 생겼어요. 열심히 그림을 그리다 보면 행복의 문이 열릴 것이라구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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