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돈화문 앞 '노스테라스'…자리 아닌 공간을 택한 김상헌 전 네이버 대표의 아주 사적인 삶

"북카페 빵·꽃사러 아내와 마트로 양재동으로…책 읽는 작은 마을에 놀러오세요"

신혜선 이로운넷편집장/박유진 이로운넷 인턴기자 | | 04/14 15:12 | 조회 110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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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이버 대표직에서 물러나 김상헌씨가 와룡동에 터를 잡고 북 카페 사장으로 변신했다. 노스테라스(건물이름이자 카페이름)에 가면 서양사람들의 눈으로 그들의 언어로 기록한 한국 책이 700권 가량 있다. 그는 책과 함께 사람을 만나며 그곳에서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다./사진=김창현 기자
네이버 대표 사직 1년, 김상헌 전 대표가 북 카페 사장이자 시쳇말로 주님(하느님)보다 높다는 ‘건물주(님)’이 됐다. 서울 종로구 와룡동. 창덕궁 돈화문을 마주한, 서울돈화문국악당 모퉁이를 돌아서는 한적한 곳. 시세를 물어보지 않았지만 리모델링을 생각해도 큰돈이 투자됐을 듯했다. 근데 어째 이상하다. 종일 있어도 손님 한 명 안 온다. (인터뷰하는 두어 시간 동안 변호사 지인 한 명이 들른 일 외에 들여다보는 과객 하나 없었다. 북 카페 연 것을 요란하게 알리지도 않았지만, 동네가 조용하다. 장사할 요량이 없는 건물주임을 바로 알게 됐다.)

“터가 무지 좋다는데, 오는 사람은 왜 없는지 모르겠어요. 예쁘게 꾸미느라 공도 엄청나게 들였는데, 하하하.”

‘노스테라스’(North Terrace)는 건물 이름이자 1층 북 카페 이름이다. 건축가는 대학 82학번 동기. “‘언제고 내 집도 꼭 지어달라, 지어주겠다’고 서로 말했는데 그 약속을 지킨 거죠. 건물 이름요? 몇 번을 퇴짜맞았는데 이건 바로 OK 하더라고요.”

노스텔지어가 떠올랐다. 아니라고 웃는다. 노스테라스는 김 대표 부인의 성 ‘노(스)’ 발음에 부부 거주공간인 건물 5층 테라스를 붙인 이름이다. 며칠 전 들여놨다는 화분이 떡 하니 테라스 주인이어서 화분 옆으로 조심해 다녀야 할 작은 공간이다.

“테라스에 올라와서 이 건물을 사기로 맘먹었죠. 맘에 쏙 들더라고요. 친구와 함께 건물을 보러 다녔는데 이 인연도 엄청난 거죠. 다른 곳에서 오라는 걸 마다하고 온 트레바리도, 같은 공간에 있는 코리아스타트업 포럼도 제겐 중요한 인연입니다. 낮에는 건물이 텅텅 비니, 주부 대상 북 클럽 할까, 아내랑 그런 궁리도 하고요.” 장사가 되건 말건, 북 카페 주인장 얼굴은 해맑고 신이 넘치기만 한다.

“5층은 집사람과 둘이 살기 ‘딱’이에요. 살다가 죽어도 될만한 곳입니다.”

부인이 좋아한다는 5층 전기 온돌방 창문으로는 창덕궁 인정전 현판과 처마가 바로 보인다. “여기서 고스톱 치면 좋겠죠? 하하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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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스테라스 5층은 거주공간이자 작은 게스트하우스. 김 대표의 '보물인' 만화책만 있는 작은 아지트도 있다. 사진은 김 대표 부인이 좋아하는 창덕궁 인정전 현판이 보이는 방. /사진=김창현 기자

#노스테라스, 자연인 내 삶의 공간이 작은 마을이자 커뮤니티

“건물이 하나의 작은 마을이자 커뮤니티가 되기를 바라죠. 저는 그것을 책임지는 거죠.”

건물주가 된 사연을 묻자 “하나의 삶을 택한 것”이라고 머뭇거림 없이 답한다. 매개는 책과 사람이다. 청년 벤처기업 트레바리에 공간 사용을 허락한 이유(트레바리도 다른 큰 기업의 입주 제안을 거절하고 이곳을 택했단다)도 그들이 책 읽기를 하는 사업 모델이어서다.

“큰 회사(LG, 네이버)나 엄격한 조직(법원) 등에서만 일했죠. 50대 중반에, 새 인생은 뭘 하면 좋을까, 솔직히 방향을 못 잡겠더라고요. 정말 내가 좋아하고 의미 있는 일이 뭘까에 생각을 집중했어요. 책을 주제로 한 공간이면 좋겠다는 생각을 했죠.”

책은 그의 인생에서 빼놓을 수 없다. 1층 북 카페 외도 4층 사무실과 5층 개인 공간 곳곳이 책이다. 거의 오랜 고서, 영어로 된 한국 이야기책이다. 한국의 새를 소개하는 영어책, 한국 전래동화를 독일어로 번역한 책 등. 외국인이 쓴 한국 책은 이 빌딩에만 700여 권 있다. 아지트 같은 작은 방에만 만화책이 가득하다.

“외국에 나갔을 때, 이방인이 되니 한국 책이 그립더라고요. 오랜 서점을 찾아가 보니 구한말 한국이 처음 서양에 알려질 때 출간된 책들이 많더군요.”

낯선 도시의 헌책방을 뒤지거나 전문 딜러를 찾는 일이 취미가 됐다. 아마존 같은 인터넷 온라인 서점에서 고서를 모았다. 그렇게 모은 책에 대한 사랑은 각별하다. 자국이 남을라, 포스트 잇도 안 붙인다.

김 대표는 어렸을 때부터 책 사랑이 넘쳤다. 모은 책을 도서관에 몇 천권 이상 기증해 표창장을 받기도 했다. 도서관도 생각했었다. “아휴, 웬만한 성의나 의지 없이는 할 수 없는 일이더라고요. 대신 이 정도면, ‘한국에 대한 서양 서적’이라는 차별화한 작은 도서관을 연 거라고 할 수 있지 않을까요?”

힘들게 수집한 도서를 카페에 전시하는 이유는 김 대표 나름의 사회 기여 방식이다. 그리고 서울에 없는 '독특(유니크)한' 것을 해보고 싶었다. 그는 “외국인들에게 깊이 있는 한국 소개를 하고 싶었다”며 “서울에 이런 공간이 하나쯤은 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고 말했다. 국내 독자들은 과거에 한국이 외부에 어떻게 비쳤는지 알 수 있다.

김 대표는 당시에 서양 작가들이 왜 이런 책을 썼는지 생각해보면 ‘우리가 모르는 한국’을 느낄 수 있다고 말한다. 더 많은 사람이 카페에 들르길 바라는 이유다. 그는 자신이 가진 자료를 알려 외부인이 보는 한국 모습에 대한 관심을 불러일으키고 싶다.

노스테라스 1층 카페 문을 열고 들어와 제일 먼저 만나는 건 벽을 장식한 고서와 외국어로 된 한국 소개 책들이다. 오른쪽에는 '빅 북(Big Book)' 시리즈 중 한 권이 넓게 펼쳐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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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북 카페 노스테라스에 들어오면 오른쪽에 펼치진 빅북. 김 대표는 "서울 시내 카페 300만원짜리 책을 맘껏 볼 수 있게 펼쳐놓은 곳은 여기 뿐일 것"이라고 자부심을 감추지 않았다./사진=노스테라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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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북 카페 노스테라스에는 서양인이 쓴 한국 책이 가득하다. 외국 생활에서 한국 책 찾기에 맛을 들인 김 대표는 헌책방을 뒤지고, 아마존 등에서 고서를 사 카페에 전시했다. 손님 누구나 와서 볼 수 있다. /사진=김창현 기자

“한국에 대한 서양책 있는 작은 도서관? 노스테라스에 차 마시러 오세요.”

그는 6개여 월 전 프라이머 액셀러레이터 파트너 일도 시작했다. “약간 기여하는 정도”라며 의미를 축소한다.

개인 돈에 외부(대기업) 지원을 받아 투자일을 본격적으로 해볼까도 생각해봤다. 성미에도 맞지 않았고 회의가 들더란다. "(대기업의 큰돈을 받아 운영하는 게) 자랑스러운 일일까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요. 자기 돈만 갖고 하면 임팩트가 작으니 제대로 일을 벌리려면 외부 도움이 필요하긴 한데…. 뭐 딜레마죠."

고민 끝에 청년들을 위한 선배의 역할을 우선 하기로 했다. “큰 회사만 운영해 봤으니 항상 회사 입장에서 생각했다고 봐야죠. 지금은 스타트업 생태계라는 관점에서 어떤 회사가 우리나라에 있으면 좋을지 생각해요. 개인 투자라 큰 액수도 아니고, 투자 이익을 염두에 두기보다는 생태계 조성에 일조한다는 생각 정도입니다. 임팩트 투자나 환경 개선 분야도 제 관심 대상입니다.”

그가 지난 6개월 사이 투자한 기업은 세 곳이다. 영어권 인디 작가가 만드는 플랫폼 ‘래디시’, 한국에 오는 외국인 대상으로 여행 활동 소개하는 ‘트레이지’, 싸고 좋은 침대 매트리스를 만드는 ‘삼분의 일’이다.

불안의 시대다. 안정을 갈망하는 요즘 청년들에게 조언을 부탁했다. “저는 호기심이 많았고 낙천적이었는데, 초등학생 때부터 사람은 왜 태어나서 죽는 건지, 우주는 뭔지도 생각을 많이 했어요. 죽음은 삶의 최고의 발명품이다, 스티브 잡스가 한 말이죠? 잃을 게 없다고 생각하는 자세에 동의합니다. 어른이 돼서도 돈이 부질없다는 생각을 많이 했죠. 조 단위 돈이 있는데도 자긴 돈이 없다고 표현하는 사람들 많은 거 아세요? 인생 별거 없어요. ‘스스로 귀하다 생각하며 살라’고 말해주고 싶습니다.”

성공한 어른으로 청년들에게 무엇을 들려주기보다 인생 2, 3모작을 사는 모습을 그저 보여줄 작정인가 보다.

“2006년 LG에서 네이버로 옮긴 이유는 인터넷에 한번은 꼭 올라 타보고 싶다는 생각을 이전부터 한 선택이었어요. 근 2년을 모색하다가 간 건데, 실은 그때 이미 개인으로 돌아왔을 때 의미 있게 사는 삶은 어떤 모습일까 생각했어요. 지금요? 사회에 보탬이 되고 싶지만 ‘자리’를 고민하진 않고 있습니다. 참, 요즘 저는 전문 사회자가 돼가고 있어요. 남의 말을 잘 정리하더라고요. 하하하.”

미국 전직 국방 차관의 강의 한 장면을 들려준다. “차관일 때는 커피 달라 하니까 예쁜 사기그릇에 주더니 그날 커피를 달라 했더니, 알아서 마시라고 하더라는 걸 연단에서 말하는 겁니다. 그래서 지금 종이컵으로 마시고 있다면서. 자리와 자기를 혼동하지 말라 합디다. (자리가) 영원히 내 것은 아니라는 생각을 해야 한다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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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층 김 대표 책상. 옆에는 기억자 모양으로 부인의 책상이 놓여있다. 김 대표 공간 옆에는 코리아 스타트업 포럼이 입주했다. 김 대표는 노스테라스가 책과 함께 하는 작은 마을이자 커뮤니티가 되길 원한다. 김 대표는 그 마을을 가꾸며 인생 이모작을 시작했다. /사진= 김창현 기자

#‘ㄱ’ 자로 놓은 부부의 책상…'자리' 아닌 의미있는 삶을 고민하며 공부하는 곳

인터뷰를 끝낼 무렵, 법원에 갔던 부인이 돌아왔다. 대화를 청했으나 웃음으로 답하면서 손사래를 친다. 부인은 변호사다. 최근 대형 법률사무소를 그만두고 개인 변호사를 개업했다. “지금 변론은 하던 거라 마무리해야 하고, 스타트업 관련 사건 정도만 하기로 했어요.”

고액 수임료를 포기한 대신 부부는 4층에 ‘ㄱ’ 모양으로 책상을 두고 함께 공부하는 시간을 갖게 됐다. 이들은 아침 일찍 카페에서 사용할 빵을 사러 마트에 간다. 카페 곳곳에 놓인 화병의 꽃도 양재동 시장에서 직접 산 것들이다. 월 몇백씩 꼬박꼬박 세받으며 '건물주' 노릇하려고 터를 잡은 게 아니니 당연하고 자연스러운 모습이다. 그에게 노스테라스는 임대사업용이 아닌 자연인 그가 살고자 하는 공간일 뿐이다.

“헬렌 니어링, 스콧 니어링 부부의 삶은 오래전부터 제 롤 모델이었죠. 그들은 먹을 만큼만 벌자는 생각으로 집도 농사도 직접 지었죠. 화려한 도시 삶을 버리고 떠난 그들이 한참 후 ‘조화로운 삶’이란 책을 썼는데, 그 책에 ‘많은 사람이 찾아왔다’는 문구가 있더군요. 저는 서울을 떠날 필요는 없다고 생각했고요, 이 건물에서 그 삶을 시작한 겁니다. 제가 늙어도 출근하는 곳, 제가 사는 작은 마을. 노스테라스에서 책과 함께 많은 사람을 만나면 좋겠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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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층 노스테라스 북 카페 전경
김상헌 대표가 뽑은 노스테라스 도서 Top 5
▶ 바실 홀 ‘10일간의 조선항해기’(Basil Hall, Account of a voyage of discovery to the west coast of Corea, and the great Loo-Choo island)
영국 해군 장교이자 탐험가인 바실 홀이 1818년에 출판한 항해기다. 우리나라의 서해안을 10일간 탐사한 내용과 그림이 담겨 있다. 200년 전 서양인들의 눈에 한국인들이 어떻게 비쳤는지 알 수 있다.
▶카를로 로제티 ‘꼬레아 꼬레아니’(Carlo Rossetti, Corea e Coreani)
100년 전 대한제국기에 서울 주재 이탈리아 외교관 카를로 로제티가 쓴 견문기다. 가장 많은 한국 사진이 있는 서양 고서다. 집안의 일상사를 비롯해 서울 유, 황제와 궁정, 한국의 풍물과 문화를 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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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상헌 대표가 자랑하는 노스테라스 책 5선. /사진제공=노스테라스
▶존 로스 ‘한국, 그 역사와 관습과 풍습’(John Ross, Corea, Its History, Manners and Customs)

서양 언어로 기록된 최초의 한국 역사책. 제목은 ‘코리아’지만 한국이 한나라의 일부처럼 표현됐다. 김 대표는 “저자가 한국을 와보지 않고 쓴 것 같다”고 말한다. 인쇄술이 덜 발달한 시기에 쓰인 책인데도 색깔 그림이 몇 개 있어 당시에도 사회적 값어치가 컸으리라 짐작된다.
▶홍정우 ‘춘향전’(홍정우, Printemps Parfume)
홍정우가 1892년에 프랑스어로 최초 번역한 한국 소설이다. 간편하게 들고 다닐 수 있도록 포켓 판으로 제작됐다. 홍정우는 우리나라 최초의 프랑스 유학생이자 김옥균을 살해한 사람이다. 홍종우가 춘향전 번역본을 출간한 후 몇몇 프랑스의 식자들이 조선 문학작품에 관심을 보였다.
▶타셴 ‘애니 레보비츠’ (Taschen, Annie Leibovitz)
사진작가 애니 레보비츠가 독일의 유명 출판사 타셴과 손잡고 제작한 사진집. 외국 연예인들 사진이 대부분이다. 책의 무게는 35kg, 크기는 세로 70cm에 가로 50cm로, 약 300만 원. 카페에 들어서면 문 바로 옆에 펼쳐있다. 김 대표는 “이런 책을 누구나 볼 수 있게 전시한 카페는 노스테라스 뿐일 것”이라고 자부한다. 누구나 책장을 넘길 수 있다. 흰 장갑도 옆에 두었다.

*관련 기사는 이로운넷 홈페이지(http://www.eroun.ne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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